신용도가 투기등급 수준인 중소·중견기업도 금융지원을 받을 길을 정부가 열어두기로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일감이 떨어진데다 낮은 신용도로 시중은행 대출마저 막혀 도산 위기에 몰린 기업이 늘고 있어서다.
5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납품계약 기반 제작자금 보증 프로그램의 지원 범위를 신용등급 B+(무역보험공사 산정 기준 G등급) 이하 기업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납품계약 기반 보증 프로그램은 납품계약서만 있으면 무보 등의 보증으로 추가 금융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에서 5,000억원 규모로 지난달 신설한 제도다.
신용도가 B+ 이하인 기업은 투기등급으로 분류돼 원칙적으로 납품계약 기반 보증을 받기 어렵다. 하지만 산업부는 별도의 특례심의위원회를 가동, 기업의 기술경쟁력 등을 고려해 저신용 기업까지 보증범위를 넓히기로 했다. 정부 관계자는 “충분한 경쟁력을 가졌음에도 일시적인 자금경색을 버티지 못해 업체가 도산하는 일만큼은 막아야 한다”며 “특례를 통해 B+ 이하 기업에 대한 지원을 가능한 한 늘려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는 코로나19 사태로 자동차부품 업체 등의 자금난이 심화한 데 따른 것이다. 국내 자동차부품사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사태에다 인건비 상승, 글로벌 공급망 붕괴 등 코로나19사태까지 겹쳐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국내 자동차부품사 3,365사 중 94%는 신용도가 투기등급(BB 이하) 수준이라 자력으로는 시중은행을 통한 대출이 쉽지 않다. 업계는 코로나19로 인한 피해가 본격화하는 만큼 신용등급이 더 떨어지면 자금을 조달할 길이 사실상 없다고 호소해왔다.
정부 내부에서는 저신용기업도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채권(P-CBO)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함께 논의되고 있다. P-CBO는 신용도가 낮아 회사채를 직접 발행하기 어려운 기업의 신규 발행 채권을 모은 후 신용보증기금의 보증으로 회사채를 발행하게 하는 제도다. 정부가 P-CBO 지원 규모를 확대하고 있지만 심사의 문턱에 걸려 B+ 등급 이하 기업의 활용실적은 미미한 상태다. 정부 관계자는 “투기등급 업체에까지 지원범위를 넓히려면 신보의 재정을 더 확충해야 한다”며 “예산당국은 재정이 추가로 들어가는 만큼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산업부에서 선별적 지원이라도 이뤄져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김우보기자 ub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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