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 등 국민 드라마를 잇달아 써낸 ‘흥행불패’ 김은숙 작가의 신작으로 기대를 모았던 SBS ‘더 킹: 영원의 군주’(이하 ‘더 킹’)이 초라한 성적을 이어가고 있다. 총 16부작 중 8회까지 방영돼 막 반환점을 돌아섰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김 작가가 그려낸 ‘평행세계’라는 신선한 소재와 한류스타 이민호의 군 제대 후 첫 복귀작으로 방영 전부터 화제가 된 ‘더 킹’은 지난 4월 17일 첫 방송된 후 시청률 11%(이하 닐슨코리아 전국 유료가구 기준)를 넘기며 순항하는 듯했다. 그러나 방송 2주 차부터 9% 대로 떨어졌고, 지난 8일과 9일 방송은 시청률 8.1%를 기록하며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파리의 연인’ ‘신사의 품격’ ‘도깨비’ 등 김 작가의 작품은 대부분 완벽하지만 냉정한 남자 주인공과 평범한 여주인공이 티격태격하다 사랑을 키워가는 구성을 이어왔다. 신데렐라 스토리를 기본틀로 하는 만큼 ‘자가복제’라는 비판도 이어졌지만 “이 안에 너 있다”(파리의 연인)와 같은 톡톡 튀는 대사는 김 작가 작품의 매력으로 꼽힌다. 최근 작품인 ‘태양의 후예’나 ‘미스터 션샤인’에서는 여주인공이 각각 소명의식을 가진 의사, 독립운동에 뛰어든 저격수로 그간 김 작가가 주로 그려낸 수동적인 여주인공에서 벗어났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더 킹’은 그의 최근 작품보다 퇴보한 듯 보인다. 개연성이 떨어지는 이야기 구조와 시대착오적인 성역할 등이 아쉬움으로 꼽힌다. 실제로 ‘백마를 타고’ 나타난 왕 이곤(이민호 분)은 25년간 만나기를 기다려왔다는 이유로 처음 만난 정태을(김고은 분)을 끌어안고 “황후로 맞이하겠다”고 통보한다. 이는 설렘을 주기보다는 당황스러움과 황당함을 안겼다. 공희정 드라마 평론가는 “판타지 드라마라 해도 어느 정도의 타당성이 필요한데, 이곤이 정태을에 대해 갖고 있는 감정은 많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기 어려운 모습”이라고 평했다.
주체적인 직업을 가진 여성캐릭터들이 등장했지만 이들은 결코 능동적이지 않다. 정태을은 대한민국 강력반 형사, 구서령(정은채 분)은 대한제국 최연소 여성 총리로 성역할 고정관념을 깨는 직업을 가졌다. 그러나 정태을은 이곤의 세계인 대한제국으로 넘어오자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수동적 인물로 그려진다. 구서령은 황제 이곤과의 결혼을 욕망하는 존재로, 총리 역할보다는 화려하고 섹시한 외모로 황제를 유혹하는 데에만 관심을 쏟는다. 구서령의 “와이어가 없는 브라는 가슴을 못 받쳐줘서요”와 같은 대사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다만 숱한 히트작을 써온 김 작가인 만큼 ‘김은숙 매직’이 발현될 가능성은 아직 남아있다. ‘평행세계’라는 소재로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며, 김고은의 ‘1인 2역’ 활약이 본격적으로 예정돼 있는 등 이제 절반을 지나온 드라마가 뒷심을 발휘하길 기대해본다.
/김현진기자 star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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