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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방지법' 비웃는 텔레그램의 실체는?

러시아 두로프 형제, '검열받지 않을 자유' 목적으로 설립

철저한 보안 위해 수익사업 안해..두로프 사비로 운영

서버 소재지도 미궁...독일, 영국, 싱가포르 등 수시로 이전

n번방 사건 가담자에 처벌을 촉구하는 피켓./연합뉴스




국회의 ‘n번방 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의 통과가 임박하자 이를 막기 위한 인터넷업계의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 등 관련 단체들은 효과도 없는 법안이 졸속 처리될 전망이라며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무엇보다 ‘n번방 방지법’이 사건의 통로가 된 텔레그램과 같은 해외 사업자에 대한 규제집행력은 전혀 없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지난 7일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한상혁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도 “개정안이 해외 사업자에 대한 제재가 미치지 못하고 실효성이 반감되냐”는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동의를 표명한 바 있다.

사실 국내에 관련 법안이 도입돼도 텔레그램과 같은 해외 사업자를 통제하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는게 전문가는 물론 이용자들 대다수의 관측이다. n번방 방지법’을 비웃는 텔레그램의 실체를 들여다본다.



“인터넷 IP는 앗아가도 자유는 앗아가지 못한다”

처음부터 텔레그램은 ‘검열받지 않을 자유’를 목적으로 탄생했다. 러시아의 페이스북 격인 ‘브콘탁테(VKontakte)’의 창립자 파벨 두로프(36), 니콜라이 두로프(40) 형제가 푸틴 정권의 검열을 피해 2013년 독일에서 만들었다. 두로프 형제는 2011~2012년 러시아 총선과 대선 이후 반(反)푸틴 시위 참여자에 대한 러시아연방보안국(FSB)의 개인정보 요청에 반발해 망명한 상태였다. 파벨 두로프는 2018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영화 ‘브레이브 하트’ 사진과 함께 “인터넷 IP는 앗아가도 자유는 앗아가지 못한다”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텔레그램은 메시지 암호화와 대화 삭제 등 보안 기능을 앞세워 고객을 모았다. 최근 공식 발표한 월 이용자만 4억 명이다. 텔레그램은 대화에 참여한 사용자 기기에만 메시지 내용이 저장되는 ‘비밀 대화’ 기능을 지원한다. ‘종단간 암호화(End-to-end encryption)’ 기술을 활용해 송신자와 수신자만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상대방 기기에 남은 메시지까지 자유롭게 삭제가능하다. 지난 2014년 상금 30만 달러(약 3억원)를 걸고 텔레그램 암호 체계를 해독하는 해킹 콘테스트를 열었지만 성공한 사람은 없다.

텔레그램은 광고 등을 통해 돈을 벌지도 않는다. 보안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창업자 중 한명인 파벨 두로프의 사비로 운영된다. 텔레그램 측은 운영자금이 부족하게 될 경우 수익사업이 아닌 기부를 통해 충당할 것이라는 방침이다.

위치도 미궁이다. 독일에서 설립한 후 영국, 싱가포르, 아랍에미리트 등으로 소재지를 수시로 옮겨왔다. 경찰 역시 미국 수사당국과 협력해 위치를 추적 중이다.



‘자유 위한 소통창구’

텔레그램은 독재 정권 하 운동가들의 소통 창구로도 애용된다. 철통같은 보안에 어느 정부의 협조 요청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란 전역으로 퍼진 2017년 반정부 시위에서 텔레그램은 시위 정보를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는 메신저로 널리 사용됐다. 시위 규모가 2009년 이후 커지자 이란 정부는 부랴부랴 텔레그램 차단에 나섰다. 홍콩 민주화 시위가 뜨겁게 달아 올랐던 지난해 7월 홍콩의 텔레그램 가입자가 이달에만 11만명이 늘었다. 13만 명이 넘는 홍콩 시민이 한 채팅방에서 시위 방향성에 대한 토론을 벌이고, 정보를 공유해 화제가 됐다. 텔레그램으로 당국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서다.

자료: 시장조사기업 랭키닷컴




이처럼 철저한 보안으로 국내에서는 ‘사이버 망명지’로 주목을 받았다. 수사기관의 ‘카카오톡 사찰’ 논란이 불거졌던 지난 2014년에는 텔레그램 가입 열풍이 불었다. 2016년에는 국가정보원의 감청 권한을 확대하는 테러방지법이 통과되면서 텔레그램으로 ‘메신저 망명’이 반복됐다.



“범죄자와 테러리스트의 집”

하지만 익명성과 보안성을 보장하는 텔레그램은 이용자들을 열광시킨 동시에 범죄자들을 끌어모았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IS)가 테러를 종용하는 창구로 이용한 게 대표적이다. 북한 해킹조직으로 알려진 ‘라자루스(Lazarus)’ 역시 텔레그램을 이용해 암호화폐를 해킹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2018년 테리사 메이 영국 전 총리는 텔레그램을 ‘범죄자와 테러리스트의 집’이라고 비판하기도 했을 정도다. 2018년 텔레그램은 아동 음란물이 공유된다는 이유로 애플 앱스토어에서 삭제되기도 했다.



‘기술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어’

문제는 해결방안이 요원하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텔레그램은 하나의 수단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소라넷’에서 웹하드로, SNS인 ‘텀블러’, 메신저 ‘디스코드’, ‘다크웹’ 등으로 장소만 바뀌며 범죄가 벌어지고 있어서다. 이상진 고려대학교 정보보호대학원 원장은 “다크웹 같은 사각지대를 찾아 범죄가 옮겨가는 풍선효과를 낳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기술만으로 근본적인 해결책을 만들 수 없다”고 지적했다.

1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한국인터넷기업협회·체감규제포럼·코리아스타트업포럼·벤처기업협회 4곳의 주최로 열린 20대 국회의 인터넷규제입법 임기 말 졸속처리 중단을 촉구하는 긴급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손피켓을 들고 있다./성형주기자


‘잠입수사’가 대책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3월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인 구태언 변호사는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성착취물 유통 범죄는 은밀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언더커버 인베스티게이션(비밀수사)을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 4월 디지털 성범죄 관련 수사를 위해 잠입수사 기법을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디지털 성범죄자에 대한 강력한 단속과 처벌도 요구되는 상황이다. 이 원장은 “아동 성범죄가 수면 위로 올라온 시점에서 범죄자에 대한 일벌 백계와 국제 공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 변호사는 “국가의 지속적인 단속과 법 집행을 통한 예방효과를 노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지현·김성태기자 ohj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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