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백화점그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인수합병(M&A)과 신사업 진출 등 몸집 불리기에 나선다. 대다수 기업이 코로나19에 따른 세계적 경제위기로 ‘생존’에 올인하는 가운데 확장경영에 나서겠다고 결정한 한국 기업은 현대백화점그룹이 사실상 유일하다. 현대백화점그룹은 과거 IMF 외환위기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타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넉넉한 보유 현금을 활용해 몸집을 불렸다. 이번 코로나19 위기 또한 외형 성장의 기회로 삼는다는 전략이다.
17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현대백화점그룹은 코로나19 사태가 잠잠해진 후 기존 사업과 시너지가 나는 분야에서 M&A와 신사업 진출을 적극 검토하기로 내부 방침을 확정했다. 최근 그룹 산하 패션회사인 한섬이 화장품 사업에 뛰어들기로 한 것 또한 같은 맥락에서 결정됐다.
현대백화점그룹은 특히 올해 그룹 산하 유료방송사업자인 현대HCN 매각이 성사될 경우 매각 대금을 M&A와 신사업 진출에 활용할 방침이다. 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인 현대HCN은 가입자 수 134만명에 지난해 2,698억원의 매출과 397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린 알짜 사업체다. 부채비율도 9.4%로 낮다. 금융투자업계에서 거론되는 현대HCN 매각가는 6,000억원 안팎이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이달 내 현대HCN 예비입찰 공고를 내고 공개매각에 나선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투명하게 매각 작업을 진행할 방침이어서 올해 안에 매각이 완료될 수도 있다”며 “매각 대금은 기존 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야에 재투자하는 발전 전략을 구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유통업계에서는 현대백화점그룹이 식품, 리빙, 라이프스타일, 뷰티, 신개념 유통채널, 콘텐츠 분야에서 M&A와 신사업 진출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대백화점그룹의 확장경영은 사실상 이미 시작된 상태라고 봐도 무방하다. 지난해 하반기 두산이 철수한 면세점 사업장을 인수해 서울 동대문에 시내면세점을 추가했고 올해는 인천공항 면세점 사업권을 따내 큰 변수가 없다면 오는 9월부터 영업을 시작한다. 11월에는 경기도 남양주 다산신도시에 현대프리미엄아울렛 남양주점을 오픈하고 내년에는 서울 여의도 파크원에 현대백화점 여의도점을 연다. 일각에서는 현대백화점그룹이 사세를 확대해 나가는 시기에 코로나 사태가 터진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지만 현대백화점은 오히려 더 적극적인 공격경영을 펼치겠다는 방침이다.
현대백화점그룹이 이 같은 자신감을 보이는 것은 안정성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경영을 줄곧 펼쳐왔기 때문이다. 그룹 관계자는 “현대백화점그룹은 과거 유통업계의 대형마트, 기업형슈퍼마켓(SSM) 확장 경쟁에 뛰어들지 않았고 요즘도 경쟁사들이 거액을 투자하는 종합인터넷쇼핑몰 분야에서 출혈경쟁하지 않는다”면서 “이 같은 보수적 경영을 통해 체력을 비축하면 경제위기 때 자연스럽게 기회가 찾아온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현대백화점의 2019년 당기순이익은 2,430억원, 순이익률은 11.1%다. 부채비율은 53.1%로 낮은 편이고 자본유보율은 무려 3,641.1%나 된다. 자본유보율이 높다는 것은 투자를 위해 잔뜩 웅크리고 있다는 의미이다.
현대백화점그룹은 과거 경제위기 때의 사세확장 성공경험을 큰 자산으로 여기고 있기도 하다. IMF 외환위기가 진정된 후인 2000~2002년 서울 신촌의 그레이스백화점을 인수해 현대백화점 신촌점으로 오픈했고 울산의 향토 백화점인 주리원을 인수해 울산점으로 삼았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인 2009년에는 현대백화점 유플렉스 신촌점을 열었고 그 직후 대구점과 충청점을 오픈한 바 있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백화점그룹은 큰돈을 투자해 경쟁에 뛰어들어 살아남아도 시장의 일개 플레이어가 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면서 “그런 의미에서 과거 대형마트와 SSM, 최근의 종합 e커머스 경쟁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형마트와 SSM 위기가 찾아온 현재 현대백화점그룹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다”며 “코로나19 사태 종식 이후 매물로 나오는 기업을 적극 인수하거나 신사업 개발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맹준호기자 next@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