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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반복되는가…'네오데카메론'에서 피어나는 '네오르네상스'

[박상진의 문학으로 쓰는 이야기]

■이탈리아의 작가 조반니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흑사병

일찍이 14세기 중반 유럽을 휩쓸며 전체 인구의 무려 3분의 1(약 2,000만명 추산)의 목숨을 앗아간 흑사병이 쥐가 옮기는 전염병이라는 사실은 19세기가 되어서야 알려졌다. 원인을 모르니 대책도 세울 수 없었다. 지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전 지구가 유례없는 몸살을 앓고 있어도 문명이 끝장난다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 근대 과학이 바이러스를 제압하리라는 믿음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대 이전에 밀어닥친 흑사병의 광풍은 인간으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천체 운행의 영향이나 하느님의 징벌 같은 것이었다. 오로지 참회와 기도로 구원을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14세기 흑사병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 그리 상세하게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보카치오가 쓴 ‘데카메론’은 목격자 노릇을 톡톡히 한다. 보카치오는 흑사병이 동방에서 시작해 무서운 기세로 퍼져갔다 하니, 현재 전 세계가 직면한 코로나 사태는 그 반복처럼 보이기도 한다. 보카치오는 1348년 피렌체를 덮친 흑사병의 증세를 이렇게 보고한다. “병에 걸리면 샅이나 겨드랑이에 종기부터 나기 시작했다. 달걀처럼 보이기도 했고 사과만 하기도 했다. 종기는 삽시간에 온몸으로 퍼져나갔고, 검거나 납빛의 반점들이 나타났다. 일단 반점이 나타나면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병에 걸린 사람을 접촉하면 여지없이 마른 장작이나 기름종이에 불이 확 옮겨붙듯 빠른 속도로 번져나갔다.”

셰익스피어 등 세기의 문호들에게 영감을 준 이탈리아 대표 문학작품인 조반니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표지.


◇땅에 떨어진 인간 가치

걷잡을 수 없이 휘몰아치는 죽음의 바람 앞에서 인간의 가치와 예의는 땅에 떨어지고 와해됐다. 흑사병은 신분과 계층을 가리지 않고 침투했고, 누구도 살아남지 못하고 최후의 시간이 도래하리라 믿었다. 하지만 신분과 계층에 따라 페스트에 대처하는 방식과 결과는 달랐다. 하층민과 중산층의 상황은 더 비참했다. 가난 때문에 한집에 모여 살거나 가까이 살았던 그들은 더 빠르게 감염됐다. 길거리에는 밤낮없이 시신이 나뒹굴고 집 안에는 더 많았다. 시체 썩는 냄새가 풍겨 오면 그제야 누군가 죽었다고 알게 되는 형편이었다. 하지만 다들 연민을 품기는커녕 혹시 해를 당하지 않을까 두려워 냉랭한 태도를 취했다. 시체가 너무 많아 관 하나에 여럿을 넣는 일도 흔했고, 사이사이에 흙을 조금씩만 덮고서 구덩이가 넘칠 때까지 차곡차곡 쌓이기도 했다. 짐승들이 길거리를 제멋대로 휘젓고 다녔다. 너무나 큰 불행에 다들 무디어졌다.

대 피테르 브뢰헬의 ‘죽음의 승리’. /프라도 미술관 소장


◇불행했던 14세기 이탈리아

14세기 이탈리아는 역사에서 행복한 이미지로 남아있지 않다.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면서 혹독한 변화와 시련을 겪던 때였다. 13세기만 해도 이탈리아는 자치도시 체제를 갖추어 정치, 경제, 문화에서 역동적 모습을 보여주었다. 금융과 상업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시민계급이 전통 지주 귀족계급을 대체하면서 사회 교류가 활발해지고, 대학을 세워 중세 문화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동시에 근대 학문 탐구의 기초를 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14세기에 들어 사정이 확 달라졌다. 팽창하던 도시가 위축되고 인구가 감소하며 경작지가 줄었고, 크고 작은 전쟁이 일어났다. 경제 구조가 도시의 급격한 팽창을 감당하지 못했고, 기간 시설과 제도가 정비되지 않은 채 지나치게 비대해진 도시에서는 빈부격차와 오염 같은 부작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도 있다. 흑사병은 그렇게 누적된 위기가 폭발한 결정적 사건이었다.

이탈리아 화가 안드레아 델 카스타뇨가 그린 이탈리아의 시인 겸 학자이자 ‘데카메론’의 저자로 가장 유명한 조반니 보카치오의 초상화.


◇작가 조반니 보카치오

보카치오는 피렌체의 부유한 상인의 사생아로 태어났지만 어렸을 때부터 좋은 교육을 받았다. 가업을 이으라는 아버지의 바람에 부응해 바르디 은행의 나폴리 지사에서 일을 배웠다. 그런데 남국의 밝은 햇빛, 경제적으로 번영해 활기를 띠던 나폴리의 분위기는 오히려 보카치오의 자유분방한 상상력을 자극해 훗날 작가로 성장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에게 행복이란 은행이나 재판소가 아니라 문학과 예술에 해당하는 말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나중에 피렌체로 돌아가 작가와 학자, 행정가의 길을 걸으면서도 그는 죽을 때까지 나폴리를 그리워하며 살았다.

흑사병이 유행하던 때 보카치오는 피렌체에 머물면서 ‘데카메론’을 썼다. 평생 단테를 흠모하고 연구한 그는 ‘단테의 일생’이라는 전기를 펴냈고, 죽기 바로 전까지 피렌체 시민을 대상으로 단테의 ‘신곡’을 강연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당대의 가장 뛰어난 인문주의자였던 페트라르카와 밀접히 교유하며 고전 연구와 집필에 매달렸다. 그 결과 여러 권의 철학서와 비평서를 라틴어로 펴냈지만 학자로서의 삶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 나폴리에서 세례받은 문학적 영감을 그리워했던 것이리라.



◇‘데카메론’이 보여주는 현실의 민낯

그런 보카치오를 위대한 지성인의 반열에 올린 것은 ‘데카메론’이라는 창작품이었다. 물론 ‘데카메론’ 전체가 보카치오의 창작물은 아니다. 그리스와 로마의 문학과 신화, 음유시인들을 통해 전해오던 전설, 이탈리아 여러 지방의 민담, 페르시아와 인도, 중국의 설화에 자신의 상상력을 곁들였다. 작품 속에서 일곱 명의 처녀와 세 명의 청년은 흑사병이 창궐하는 피렌체 도심을 떠나 피에솔레 언덕 별장에 머무는 동안 하루에 한 편씩 돌아가며 각자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루가 끝날 때면 시에 가락을 붙여 노래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며 춤을 추었다. 열흘 동안 모두 100편의 이야기와 10편의 시가 모여 담겼다.

독일 철학자 헤겔은 ‘데카메론’에 대해 ‘일상의 현실에서 마주치는 기사, 사제, 시민 등 모든 부류 사람들의 사랑 또는 불륜 이야기가 희극 또는 비극의 음조를 띠면서 당대 문학의 흐름을 가장 순수하고 교양있게 완성시켰다’고 평한다. 모험, 욕망, 사랑, 행복, 재난의 극복과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지배하는 것은 냉혹한 현실에 대한 가감 없는 인식과 대책 없는 낙관주의다. 등장인물들은 대개 종교와 이념, 부와 명예가 약속하는 거짓된 낙원의 약속을 과감히 팽개치고,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냉철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들은 도덕적 순수에 호소해 획득·유지되는 패권적 권력에 의지하지 않고, 그 권력이 제시하는 이상에 가려진 현실의 민낯을 외면하지 않는다.

◇대책 없는 낙관주의

‘데카메론’의 인물들이 처한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마치 흑사병에 휩쓸린 듯, 그들은 계급 차별, 자본의 횡포, 만연한 부패와 허영, 가치관의 급격한 변화에 휘둘리고 있는 가운데서도 죽고 나서 다가올 저 세상을 준비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그들은 궁극의 이상을 믿지 않는다. 인간은 현실이 혼란스럽고 모호해 합리적 이해가 불가능할 때 종교적 구원의 공허한 약속과 이념적 이상의 조작된 희망에 기대기 마련이지만, ‘데카메론’의 인물들은 그 약속과 희망을 철저하게 조롱한다.

그들은 선인이든 악인이든, 어떤 상황에 처하든 좌절하는 법이 없다. 다만 현실을 살아갈 뿐, 결과에 대해서는 언제나 수긍한다. 주어진 운명 앞에 스스로 무력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며 거기에 어떤 불만도 없다. 그러나 운명이 그들을 과도하게 몰아칠 때에는 자신의 능력을 최대로 발휘해 그 파도를 넘어서는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다시, 흑사병의 상징성

흑사병은 인간이 스스로를 파괴하는, 언제든 반복되는 문명적 재앙의 은유다. 특히 현대에 이르러 인류는 경제적 불평등, 정치적 억압, 문화적 소외, 생태와 윤리의 교란, 인간 가치를 압도하는 테크놀로지의 발전 등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했던 상황에 처해있다. 하지만 최선의 재능을 발휘해 위기를 헤쳐나가는 ‘데카메론’의 낙관적 인물들은 인간의 가능성을 다시 믿게 하여, 흑사병 뒤에 올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도록 돕는다.

‘데카메론’에서 가장 비중이 큰 주제는 위기의 극복과 개인의 재능이다. 특히 주류에서 밀려난 여성이 기지와 재치를 발휘해 위기를 돌파하고 자기를 둘러싼 현실을 변화시키는 내용이 과반을 넘게 차지한다. 이는 분명 르네상스를 추동한 인문학자와 예술가들이 관례와 전통 주류에 상관없이 저마다의 능력을 발휘하고 인정을 받으면서 새로운 문화를 세우고 새 시대를 출발시켰다는 점과 직결된다. 그들은 개인의 재능이 현실적 성취를 보장한다는 생각을 잊은 적이 없었다. 그렇게 15세기 르네상스 인문주의는 바로 앞선 시대, 흑사병의 잿더미에 뿌려진 낙관적 의지와 실천의 씨앗에서 찬란하게 피어났다. 역사는 반복될 것인가. 코로나 역병의 위기를 넘어서는 이른바 ‘네오데카메론’의 상황은 21세기 이후로 입에 오르내리는 ‘네오르네상스’ 개념을 현실화하는 기반이 될 것인가. ‘데카메론’의 인물들은 합리적 존재로서 인간의 가능성을 다시 한 번 스스로 믿으라고 말해준다. <부산외국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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