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 중인 ‘반도체 굴기’가 허상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국내 반도체 업계에서는 중국이 인력 빼가기나 특허 도용 등으로 기술을 빠르게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만큼 국제 공조 등으로 압박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나온다.
23일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은 지난해 15.7%를 기록해 2014년 대비 0.6%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다. 보고서는 2024년에도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은 20.7%에 불과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은 오는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끌어올리는 ‘중국제조 2025’를 추진 중이지만 실제 자급률은 목표치에 크게 못미치는 셈이다. 특히 삼성전자(005930), SK하이닉스(000660) 등 외국기업이 중국에서 생산한 물량을 제외한 순수 중국 기업의 생산량만 놓고 보면 자급률은 6.1%에 불과하다. 2024년에도 중국내 반도체 생산량의 절반은 외국 기업이 차지할 것으로 분석됐다.
이 같은 중국제조 2025의 한계는 일찍부터 지적됐다. 중국은 2016년부터 10년여 동안 1조위안(약 170조원)을 투자해 반도체 자급률을 높인다는 계획이지만 이 같은 투자액은 삼성전자 1개 기업의 반도체 투자액에도 못미친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7년부터 3년간 반도체 부문에만 73조원을 투자했다. 이 같은 투자 추이가 이어진다고 가정할 경우 10년간 투자액만 200조원을 넘어서는 셈이다. 글로벌 D램 시장의 2위 업체인 SK하이닉스 또한 지난 3년간 40조원을 투자하는 등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선두 업체들은 투자 규모를 꾸준히 늘리고 있어 중국과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전망이다.
중국의 CXMT가 연내 17나노 공정 기반의 D램 양산을, YMTC가 연내 128단 기반의 낸드플래시 양산을 각각 선언했지만 업계에서는 이 또한 중국 특유의 ‘블러핑’이라고 보고 있다. 17나노 기반 D램은 현재 삼성전자의 주력 제품인 1세대 10나노급(1x) 및 2세대 10나노급(1y) D램과 미세공정 수준이 비슷하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삼성전자와 CXMT의 기술 격차가 2년 이내로 좁혀졌다는 분석을 내놓았지만 업계에서는 실제 제품이 나와봐야 비교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반도체는 웨이퍼 한개당 얼마나 많은 반도체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수치화한 ‘수율’이 중요하기 때문에 중국 업체의 원가 경쟁력 등도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YMTC가 양산을 공언한 128단 낸드플래시 또한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현재 주력제품과 기술수준이 비슷하지만 실제 양산으로 이어질 지는 물음표다.
이 같은 상황속에서도 업계에서는 중국 정부의 ‘반칙’을 우려한다. 액정표시장치(LCD) 시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인력 빼가기나 특허 도용 등으로 빠르게 기술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반도체는 크게 8개 공정으로 제작되는 데다 각 공정별 생산 노하우가 반도체 수율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중 몇개 공정 노하우를 알아내 전체 생산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반도체 공정 업그레이드가 가능한 구조다. 삼성전자가 극자외선(EUV) 공정 기반의 파운드리나 주요 D램 등 핵심 라인은 국내에 두고 기술 진입장벽이 비교적 낮은 낸드플래시(중국 시안 공장)나 14나노 기반의 파운드리(미국 오스틴) 공장을 해외에 둔 것 또한 기술 유출 우려 때문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정부가 현재는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기반의 화웨이를 무역분쟁의 주타깃으로 삼지만 향후 YMTC 등을 자회사로 보유한 중국 국영기업 칭화유니그룹을 타깃으로 삼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도 글로벌 3위 D램 업체인 마이크론을 비롯해 글로벌 3위 낸드플래시 업체 웨스턴 디지털 등을 보유한 만큼 메모리반도체 기술 유출에 상당히 민감한 편이다.
이외에도 최근 30억 달러를 중국 정부 등에서 조달하고 올해 설비투자용도로 43억 달러를 집행하겠다고 밝힌 중국 파운드리 업체 SMIC도 트럼프 행정부의 사정권 안에 들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SMIC는 현재 14나노 기반 공정을 연말까지 7나노로 업그레이드한다는 계획이다. 미국 제재로 TSMC와 거래가 불가능해진 화웨이가 SMIC를 파트너로 삼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네덜란드 ASML이 독점 공급하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수급 문제로 7나노 미만의 공정 도입은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나오지만 각종 편법을 통한 기술 업그레이드 우려도 여전하다. 또 중국이 화웨이를 대신할 또다른 팹리스를 육성하는 방식으로 미국 제재를 피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최근 미국과의 무역분쟁 재개로 ‘첨단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반도체 굴기’에 한층 속도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중국이 내수용 PC 및 일부 스마트폰에 자국산 D램 및 낸드플래시를 탑재하는 방식으로 자국 반도체 기업 육성에 나설 경우 단순 기술격차만으로는 중국의 추격을 뿌리치기 힘든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양철민기자 chop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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