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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명 ‘우승이’였던 박현경 “지금처럼 아빠랑 쭉 가야죠”

KPGA 선수 출신 ‘아빠 캐디’ 박세수씨와 함께 화제

버디든 보기든 말없이 백 메고 다음 홀로 이동

코치 따로 둔 이후론 스윙에 일절 관여 안 해

“딸 우승이 제 우승보다 100배는 더 좋아, 심적 부담 씻어 다행”

눈웃음이 닮은 부녀 박세수(오른쪽)씨와 박현경 선수가 주먹을 맞부딪치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승현기자




KLPGA 챔피언십 우승 뒤 ‘아빠 캐디’의 품에 안기는 박현경. /연합뉴스


“시니어 투어요? 한 10년 뒤에나 도전하려고요. 그때까지는 (박)현경이랑 계속 해야죠.” 아버지의 말에 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스럽기도 하지만 부상이 없으신 한 아빠랑 계속 같이 하고 싶어요.”

박세수(51)-박현경(20·한국토지신탁) 부녀가 화제다. 코로나 사태 속 첫 프로골프대회인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챔피언십 우승을 지난 17일 합작하고부터다. 챔피언 퍼트를 마치고 세리머니 하는 박현경을 선수 출신 캐디인 아버지 박씨가 와락 끌어안는 사진이 유독 매체에 많이 실렸다. 최근 만난 부녀는 이 세리머니를 두고 한마디씩 했다. “양팔 들고 세리머니 하려는데 아빠가 예고도 없이 갑자기 확 안아서(웃음).” “안 그래도 애 엄마한테 한 소리 들었어요. 좀 기다리지 거기서 왜 나오느냐고. 그래도 그 정도면 멋지게 찍힌 것 아닌가요?”




"아빠, 다시 백 메셔야겠어요"



부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콤비인가 보다. 지난 시즌 중반에 박씨는 캐디를 쉬고 갤러리로 7개 대회를 지켜봤다. 그러다 9월 한화 클래식(공동 24위)에서 막판에 미끄러진 박현경이 조용히 한마디 했다. “아빠, 다시 백 메셔야겠어요.” 아버지 박씨는 “17번홀(파4)에서 더블 보기까지 칠 상황은 아니었는데 멘탈이 흔들릴 때 컨트롤 해주던 사람이 없으니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더라”고 돌아봤다. 다시 뭉친 부녀는 11월 시즌 최종전에서 3타 차 공동 3위를 합작하더니 올해 첫 대회에서 트로피를 나눠 들었다.

박씨는 한국프로골프(KPGA) 1부 투어에서 뛰었던 선수 출신이다. 1997년부터 2002년까지 35개 대회에 참가했고 고향인 전북 익산에서 열렸던 2001년 익산오픈에서는 공동 8위에 오르기도 했다. 1999년에는 2부 투어에서 우승도 했다. 당시 아내가 임신 중이어서 박현경의 태명은 자연스럽게 ‘우승이’가 됐다.

박씨는 2002년 투어 생활을 접은 뒤 연습장과 아카데미 운영에 뛰어들었다. 박현경은 여덟 살 때 전주의 아버지 연습장에서 골프에 입문했다. 세 살 위 오빠는 골프에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딸은 클럽을 잡았을 때 보이는 총기가 남달랐다고 한다. 박현경은 “12년 골프를 치는 동안 계속 아빠한테만 배웠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배운 골프로 세계여자아마추어 팀선수권 우승, 국내 72홀 최소타(29언더파 259타), US 여자오픈 한국 예선 1위 등의 뚜렷한 성적을 냈다.




"쐐기 샷이요? 사실 미스 샷인데"



KLPGA 투어 데뷔 시즌을 마친 지난 겨울엔 변화를 줬다. 박씨는 “스윙에 있어서의 조언을 코치가 아닌 아빠의 말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아서 변화를 줘봤다”고 돌아봤다. 박현경은 세계랭킹 1위 고진영을 지도하는 이시우 코치의 미국 캠프에 들어가 체계적인 훈련을 받았다. 물론 아버지는 함께하지 않았다. 거리 늘리는 훈련에 집중하면서 드라이버 샷 거리가 최대 10야드 늘었다. 박현경은 “작년에는 거리가 아쉬웠는데 올해는 아쉽지 않은 거리를 보낼 수 있게 됐다”며 “이전보다 한 클럽 짧게 잡는 경우가 많다 보니 확실히 플레이가 편해졌다”고 했다.

KLPGA 챔피언십 마지막 날엔 13번홀(파4) 버디가 사실상 쐐기포였다. 150m쯤 되는 두 번째 샷이 그린 경사를 절묘하게 타더니 홀 세 발짝 거리에 멈췄다. 버디를 잡는 사이 경쟁자 임희정이 보기를 범하면서 박현경은 승기를 잡았다. 박현경은 “146m 거리에서 6번 아이언으로 쳤는데 사실은 미스 샷”이라고 했다. “정말 딱 한 발 차로 벙커를 넘겼어요. 빠졌다면 아마…. 그 홀이 진짜 행운의 홀이었어요.” 아버지 박씨는 “안 빠지고 겨우 넘어가는 거 보고 ‘아, 오늘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딸 우승이 100배 더 기쁘죠"



박씨는 딸이 버디를 하든 보기를 하든 별로 말이 없는 편이다. 서둘러 골프백을 메고 다음 홀로 간다. 이번엔 더 그랬다. 스윙코치에게 맡긴 이후로는 평소 스윙 얘기도 거의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코치를 통한다. 딸의 스윙 동영상을 찍어 코치한테 보내면서 ‘지금 이 부분이 좀 안 된다’는 식으로 몇 마디 붙이는 정도다.

어릴 때부터 딸에게 가장 강조한 게 뭐냐는 물음에 박씨는 “예의와 배려”라고 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강조하는 바람에 역효과를 내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도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저도 운동을 했던 사람이다 보니 다른 선수들한테 예의를 지켜야 하고 피해를 주면 안 된다고 딸한테 버릇처럼 얘기했나 봐요. 그랬더니 얘는 또 너무 주변만 생각하더라고요. 티잉 구역에 오르면 하는 말이 이거예요. ‘아빠, 골프백 뒤로 빼세요’ ‘더 뒤로 빼세요’. 그거 신경 쓰느라 자기 경기에 집중 못할 정도니….” 이쯤에서 박현경이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껴들었다. “지금은 안 그래.”

며칠 뒤 여기저기 인사를 다니느라 정신없다는 박세수씨에게 20여년 전의 우승과 비교해 이번 우승이 얼마나 기쁘냐고 새삼 물었다. “말해 뭐합니까. 100배는 더 좋죠. 우승도 우승이지만 딸이 심적 부담을 털어낸 것 같아서 기쁘네요. 다음 대회도 잘 준비해보겠습니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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