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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 연명의 경제학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트럼프, 경제 걱정에 봉쇄 풀지만

거리두기 따른 실익이 훨씬 더 커

코로나 2차유행땐 비용 천정부지

국민 생명 보호에 우선순위 둬야





미국은 지금 방대한 실험을 하고 있다. 비록 사회적 거리두기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완화했지만 완전한 통제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역학 전문가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경제활동 재개를 서두르는 주가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중요한 조치에는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합당한 설명이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를 필두로 한 정치인들 중 누구도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경제활동을 재개해야 하는 구체적인 이유를 제시하지 않는다. 그저 ‘경제를 살리기 위해’ 필요하다는 원론적 입장만 내세울 뿐이다.

신속한 경제활동 재개는 경제학적인 측면에서는 이해할 수 있지만 대단히 좋지 않은 발상이다. 아마도 인간의 삶에 값을 매길 수 없다는 반박이 나올지 모른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건 실없는 소리다. 실제로 우리는 늘 죽지 않으려 돈을 쓴다. 우리는 고속도로 안전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지만 예방 가능한 치명적 질병을 퇴치하는 데는 인색하다. 치명적인 오염을 피하기 위해 기업들을 규제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염과 관련된 사망을 원천 봉쇄할 정도의 강력한 규제를 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과거의 운송과 환경 정책은 ‘통계적 삶의 가치’에 근거해 작성됐다. 현재 통계적 삶의 가치는 대략 1,000만달러다. 코로나19 사망자들은 예상 잔여 수명이 평균치를 밑도는 고령층에 집중됐다. 따라서 이들의 통계적 삶의 가치를 1,000만달러보다 낮은 500만달러로 잡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올 법하다. 이런 주장을 받아들인다 해도 계산해보면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른 이익이 경제봉쇄로 인한 국내총생산(GDP) 손실을 능가한다. 봉쇄를 해제하지 않고 거리두기를 유지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훨씬 유익하다는 뜻이다.

삶의 가치를 고려해 사회적 거리두기의 이익과 비용을 추산한 두 건의 연구보고서가 제시한 결론도 이와 동일하다. 컬럼비아대학의 보고서는 봉쇄 조치를 1주일만 앞당겼어도 5월까지 최소 3만6,000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경제봉쇄에 따른 이익이 이로 인해 발생한 손실의 최소 다섯 배 이상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경제활동 재개를 서두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염병 예측은 대단히 불확실하다. 그러나 바로 이런 불확실성 때문에 더 많은 예방대책이 필요하다. 지나치게 일찍 봉쇄를 풀면 2차 코로나19 사태를 감수해야 한다. 이 경우 숱한 미국인들이 목숨을 잃는 것은 물론 훨씬 큰 비용과 경제적 손실을 불러올 제2의 봉쇄조치를 피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트럼프 행정부가 비용과 이익의 합리적 분석이라는 측면에서 경제활동 재개를 정당화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이유가 뭘까. 아마도 합리성이란 널리 알려진 진보 바이러스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그들이 진정으로 경제를 걱정한다면 바이러스 확산을 완화하는 가장 저렴한 방법인 마스크를 강력히 권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가장 합리적인 예방책에 맞서 문화전쟁을 벌이는 쪽을 택했다.



백악관은 조기 경제재개의 위험성을 경고한 의료 전문가들이 작당해 대통령을 모함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컬럼비아대 보고서에 관한 질문에 트럼프는 “컬럼비아대학은 진보적이고 불명예스러운 집단”이라며 당초 전문가들이 아니라 자신이 경제봉쇄를 요청했다는 거짓 주장을 늘어놓았다.

트럼프와 행정부 관리들이 시종일관 코로나19 사망자 수를 축소했다는 사실을 앞서 언급했던가. 경제봉쇄 해제 추진은 위험과 보상에 관한 적절한 검토조차 거치지 않은 채 졸속으로 내려진 결정이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마술적 사고’다.

트럼프와 보수주의자들은 코로나19가 지속적인 위협이 아니며 언젠가 지나가거나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대중이 이를 잊어버릴 것으로 믿는 듯 보인다. 마스크를 둘러싼 전쟁은 바이러스 확산 완화에 도움이 되겠지만 사람들로 하여금 바이러스가 아직도 나돌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바꿔 말하면 트럼프와 그의 우군들은 대중이 마스크를 쓰기보다 눈가리개를 착용하기 원하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현실 부정을 끝낼 수 있을까. 전염병 예측에는 상당한 불확실성이 끼어든다. 트럼프와 그의 친구들은 운이 좋을 수 있다. 신속히 경제봉쇄를 풀어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이 코로나19 감염에 따른 사망자 증가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봉쇄해제 움직임이 현실 부정의 토대 위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풀이가 가능한 대목이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GDP가 아니다. 지도자가 다뤄야 할 가장 중요한 본연의 임무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건 트럼프의 관심 분야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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