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9일 모든 남북 통신 연락 채널의 완전차단·폐기를 선언하면서 전례 없는 대남 압박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이번 ‘연락 차단’ 조치가 앞으로 이어질 강도 높은 도발의 신호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이 남한 전체를 ‘적(敵)’으로 규정한 것은 김대중 정부 시절이었던 2000년 이후 처음으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대남사업을 철저히 ‘대적사업’으로 전환하라고 지시한 만큼 군사도발 가능성도 높아졌다는 해석이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6월9일 12시부터 북남 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해 유지해 오던 북남 당국 사이의 통신연락선, 북남 군부 사이의 동서해통신연락선, 북남통신시험연락선,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와 청와대 사이의 직통통신연락선을 완전 차단·폐기하게 된다”고 알렸다.
또 김 제1부부장과 김영철 당 중앙위 부위원장이 “대남사업을 철저히 대적사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배신자들과 쓰레기들이 저지른 죗값을 정확히 계산하기 위한 단계별 대적사업 계획들을 심의했다”면서 “우선 북남 사이의 모든 통신 연락선들을 완전히 차단해버릴 데 대한 지시를 내렸다”고 전했다.
외교안보계 한 소식통은 이에 대해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도 대통령을 가리켜 ‘호전광’이라는 표현을 썼던 북한이 공식매체를 통해 남한을 적으로 지칭한 것은 극히 이례적 사건”이라며 “2000년 이후 처음 있는 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2000년 전까지 주민들에게 남한을 ‘적’으로 규정해왔으나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남북 관계에 인식 변화를 보이기 시작하면서 적대적 관계에서 협력 관계로의 전환을 시도했다. 당시 김대중 정부도 “국방백서에 북한은 ‘주적’이라는 표현을 빼라”는 북측의 요구에 2001년 국방백서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날 북한이 남한을 다시 ‘적’으로 규정하고, 이것이 ‘단계별 대적사업’의 첫 단계라고 밝혔다는 점에서 연초에 선언한 저강도 군사도발에 이은 핵·미사일 전략 도발 등 ‘충격적 행동’을 실행에 옮길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더해 북한이 남북 군사합의를 파기하고 남북 관계를 2018년 이전의 ‘대결 구도’로 되돌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9·19 군사합의에는 군사분계선(MDL) 5㎞ 내에서 포병 사격훈련과 연대급 이상 야외기동훈련 전면 중단, 동·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의 일정 구역을 완충수역 지정, MDL 상공의 비행금지구역 설정 등 내용이 담겨있다. 이 합의가 파기되면 북한이 접경 지역에서 전략 도발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진다.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이날 오전 KBS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와의 인터뷰에서 “겨울이 너무 빨리 왔다”며 “삐라는 법으로서 금지하는 조치를 해나가고, 표현의 자유라는 명분으로 그런 행동을 강행할 때는 경찰력이나 군 병력 동원해서라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예리기자 sharp@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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