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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 팬데믹에도 도시는 죽지 않는다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GPS’호스트

인구밀도 높은 홍콩·싱가포르 등

거대 도시지만 코로나 통제 성공

뉴욕시가 쇠퇴 위기에 처한다면

리더십 잃은 '불량 정부' 탓일 것

파리드 자카리아




뉴욕시의 봉쇄가 풀리기 시작하는 광경을 지켜보며 솔직히 필자도 가슴이 설렌다. 도시의 기능이 위축되고 다양한 행사가 취소돼 뉴욕시는 한동안 예전의 활기를 되찾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봉인 풀린 도시를 바라보는 마음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다. 업소들은 문을 열고 손님들을 맞았고 거리는 자택대피령에서 풀려난 행인들로 붐볐다. 사라졌던 도시생활이 돌아온 것이다.

항간에 나도는 얘기를 모르지는 않는다. 많은 사람은 이번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뉴욕시를 비롯한 대도시의 사망을 알리는 조종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높은 인구밀도로 도시 전체가 거대한 세균배양기가 될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직장인들은 굳이 사무실 근처의 인구밀집지역에 거주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원격화상회의가 자리를 잡아감에 따라 ‘사무실’은 과거의 유물이 될 처지가 됐다는 점 역시 도시의 종말을 논하는 근거로 제시된다.

그들의 말이 맞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 같은 예측은 번번이 빗나갔다. 14세기 이탈리아 피렌체는 흑사병으로 도시 인구의 절반 이상을 잃었다. 중세 작가인 조반니 보카치오가 그의 저서인 ‘데카메론’을 통해 유럽인들에게 들려준 조언은 지금의 상황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도시를 떠나시오. 몇몇 친구들과 격리생활을 하다가 가끔 저녁 시간에 함께 모여 먹고 마시며 흥미로운 담소(중세판 넷플릭스 버전인 셈)를 나누시오.” 하지만 유럽 도시들, 그중에서도 특히 피렌체가 주도적으로 문예부흥기의 막을 연 것은 인류역사상 최악의 돌림병이었던 흑사병이 물러간 다음의 일이었다.

객관적 관점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하버드대 경제학자인 에드워드 글레이저의 ‘도시의 승리(Triumph of the City)’라는 책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그는 1970년대 미국 도시들이 암담한 미래와 마주했다고 지적한다. 국제분업을 가능케 한 세계화와 업무자동화는 방직산업에서 해운업에 이르는 거대한 도시산업의 몰락을 초래했다. 자동차는 원거리 출퇴근을 용이하게 만든 지금의 줌보다 훨씬 중요한 획기적 신기술이었다. 전화 서비스도 싸고 편해졌다. 하지만 수명을 다한 것으로 여겨졌던 도시는 보란 듯 다시 돌아왔고 금융에서 컨설팅·헬스케어에 이르는 서비스 분야에서 새로운 경제적 생명력을 찾아냈다. 팩스와 e메일, 비디오 콘퍼런스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단순자산을 최대한 활용하며 도시는 다양한 방법으로 스스로를 재창조했다.



글레이저는 금융과 테크놀로지 산업의 경우 근로자들은 일터에서 가까운 곳에 거주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멘토로부터 그날그날의 교훈을 얻을 수 있으며 서로 의견을 나눌 수도 있다. 그의 데이터에 따르면 ‘인구 100만명 이상의 메트로폴리탄 지역에서 생활하는 미국인들은 그보다 작은 대도시 거주자들에 비해 평균 50% 이상 높은 생산성을 보인다. 이 같은 관계는 근로자들의 교육 정도, 경험과 직종 등을 고려해도 변하지 않는다. 심지어 개별 노동자들의 지능지수까지 감안해도 결과는 같다.

팬데믹이 대도시에 새로운 도전을 안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성급한 결론은 금물이다. 인구밀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뉴욕시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맨해튼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감염률은 다른 구역에 비해 오히려 낮았다.

외국도 거대도시들이 바이러스에 놀랄 만큼 효율적으로 대처했다. 홍콩·싱가포르와 타이베이는 모두 인구밀도가 높고 수백만명의 이용객들로 늘 북새통을 이루는 지하철 등 대중교통 의존도가 높은 대도시들이지만 코로나19 사망자 수는 놀랄 만큼 적다. 불리한 환경에서도 이들이 코로나19 통제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전의 사스를 통해 얻은 학습효과의 덕택이었다. 다시 말해 준비가 돼 있었다는 얘기다. 사스를 겪은 후 이들은 한결같이 의료와 위생 분야에 적극적으로 투자했다. 이제 그에 따른 보상을 거둬들이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뉴욕시가 코로나19에 무참히 당한 이유는 무엇일까. 지도력 부재, 잘못된 우선순위, 엇박자 정책 등 1960년대와 1970년대 뉴욕시의 쇠퇴를 초래했던 요인들이 또다시 한데 어우러진 탓이다. 이번에 뉴욕시와 다른 대도시들이 존폐위기에 처한다면 이는 팬데믹과 테크놀로지 탓이 아니라 인류의 전 역사를 통해 일관되게 도시와 국가의 쇠퇴를 초래했던 요인, 다시 말해 ‘불량한 정부(bad government)’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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