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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혁신금융하자더니…'한국판 아마존' 新독과점 될판

[경제·금융 생태계 위협하는 빅테크]

네이버페이 최대 9% 포인트...카드 사용자 대거 유입 불보듯

빅테크, 업무 세분화해 규제 회피...기존 금융사 역차별 문제도

美中도 아마존·알리바바 등 금융업 진출에 규제책 마련 고심

# 2025년 6월. 20대 대학생 김철수씨는 은행 계좌도 체크·신용카드도 없지만 일상적인 금융생활에 큰 불편을 느끼지 못한다. 모든 쇼핑은 ‘네이버 쇼핑’이나 네이버와 가맹을 맺은 오프라인 상점에서 네이버페이 포인트로 한다. 후불결제도 가능하니 번거롭게 신용카드를 발급받을 필요가 없다. 현금이나 다름없는 네이버포인트만 있으면 웹툰·음악·영화 등도 결제할 수 있다. 높은 적립률도 매력이다. 은행 정기예금 금리가 0.1% 남짓인 마당에 포인트를 충전할 때마다 2%, 포인트로 결제할 때마다 1%를 또 적립해주기 때문이다. 네이버페이 계정에 남아 있는 여윳돈은 네이버 제휴 증권사의 머니마켓펀드(MMF)로 굴리거나 다른 금융사의 예적금·펀드 등에 골라 넣을 수 있으니 간단한 재테크도 문제없다.

# 2026년 2월. 40대 직장인 이영미씨는 ‘카카오 유니버스’에 살고 있다. 전날 ‘카카오 클라우드’를 통해 회의자료를 공유한 이씨는 ‘카카오T’로 불러둔 택시로 출근했다. 차 안에서 스마트폰 속 카카오뱅크·카카오페이증권에 접속해 은행·재테크 업무를 보고 택시요금 결제는 카카오의 독자통화인 가상자산(암호화폐) 클레이로 한다. 그는 주말에 예정된 산행에 대비해 카카오 디지털 보험사에서 이틀짜리 레저보험도 가입했다.





불과 5년 뒤를 그린 이 가상 시나리오는 유통·클라우드·엔터테인먼트 시장은 물론 결제·수신·대출·자산운용 등 금융업까지 ‘빅테크’가 휘어잡은 미래를 보여준다. 그리 먼 얘기는 아니다. 미국의 아마존, 중국의 알리바바·텐센트 등은 이미 막대한 데이터와 자본, 광범위한 사용자 네트워크와 물류망을 토대로 자체 생태계를 구축하고 그 안에서 완결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지난 2017년에 ‘아마존화되다’라는 뜻의 ‘아마조나이즈드(Amazonized)’라는 신조어가 등장했을 정도다. 한국에서는 검색 서비스로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는 네이버가 본격적으로 금융업에 진출하면서 비슷한 행보를 걷고 있다.

금융업 '카피'하는 네이버
네이버가 새로 개시한 금융 사업은 선불·간편결제가 중심이었던 이제까지의 금융 서비스와는 차원이 다르다. 신용카드나 다름없는 후불(신용)결제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금융위원회는 이르면 다음달 ‘네이버페이 후불결제 서비스’를 혁신금융 서비스로 지정할 예정인데, 이렇게 되면 네이버파이낸셜은 신용카드업 면허 없이도 네이버페이 사용자들에게 신용결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 네이버페이는 네이버 쇼핑·엔터테인먼트·클라우드 등 네이버의 다른 비금융 서비스와 연계해 최대 9%의 추가 포인트도 적립해준다. 정부의 출혈 마케팅 금지 방침으로 선택지가 좁아지고 있는 카드사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혜택이다. 월간 순사용자 1,200만명이 넘는 네이버페이 사용자들이 신용카드 대신 네이버페이로 쏠릴 유인이 크다.

네이버가 선보인 유료회원제 서비스 ‘네이버플러스 멤버십’ 주요 혜택




네이버는 면허 없이도 기존 금융사와의 제휴전략으로 수신·대출·신용공여 등 금융업의 핵심 서비스를 ‘복제’하고 있다. 네이버 플랫폼을 이용하는 소비자·사업자의 막대한 데이터와 네트워크를 쥐고 있는 만큼 금융 서비스를 설계·제공하는 방식도 한층 효율적이다. 네이버가 미래에셋캐피탈과 함께 선보일 ‘스마트스토어’ 입점업체 대상 대출도 사업자의 판매실적, 재고 상황, 반품률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네이버이기 때문에 가능한 서비스다. 이미 2011년 아마존렌딩으로 매출망 금융 서비스를 시작한 아마존의 선례도 있다. ‘아마존뱅크가 온다’의 저자 다나카 미치아키는 “융자 서비스는 은행과 제2금융권의 독무대였는데 아마존은 상류·물류·금류의 데이터를 활용해 기업대출의 주요 참여자로 도약하려는 것”이라며 “엄격한 규제에 속박당하는 면허 없이도 (정보기술 기업에 의해) 모든 금융 업무는 유사하게 창조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제휴·업무 세분화로 규제는 회피
문제는 금융업의 판도를 뒤흔들고 있는 이런 ‘빅테크’들이 규제를 회피하면서 시장 독점을 공고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소비자의 돈을 맡아두고 관리하는 금융업은 그 신뢰성과 건전성 유지를 위해 다른 어느 산업보다 많은 규제를 받지만 빅테크·핀테크 기업들은 열외다. 배기헌 금융결제원 책임연구역은 “빅테크 기업들은 은행 업무를 세분화해 수행함으로써 규제를 회피하고 있다”며 “금융당국의 육성정책이 핀테크 업체만을 향하고 있어 기존 금융사 입장에서는 오히려 역차별 해소를 요구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이뿐 아니라 기업의 자금조달과 운용 불일치, 특정 상품으로의 과도한 쏠림 등으로 금융시장에 새로운 리스크가 쌓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편리하지만...新독과점 우려
더 큰 위험은 빅테크의 금융시장·데이터 독과점 가능성이다. 과거에는 엄격한 진입장벽을 통과한 금융기관들이 금융업 발전을 주도하면서 ‘기득권에 안주한다’는 비판이 높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도 핀테크 육성에 방점을 찍었다. 금융업의 자연독점 상태를 깨부수겠다는 의도였지만 이제는 반대로 빅테크에 의한 새로운 독점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이다. 기존 기업과 자영업자·소비자들로서는 전방위로 사업을 넓히고 있는 이들 플랫폼에 올라타지 않으면 뒤처질 각오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금융안정위원회(FSB)는 지난해 12월 보고서에서 “고객정보를 레버리지할 수 있는 빅테크 기업들의 촉수가 확대되면서 금융 안정성, 경쟁, 개인정보 보호 이슈들이 위협받고 있다”며 이례적으로 구글·알리바바 등 정보기술(IT) 공룡들의 데이터 독과점 문제를 언급하기도 했다.

해외에서는 빅테크의 금융시장 진출에 대응해 새로운 규제책을 짜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미국 법무부는 아마존을 비롯한 거대 IT 기업의 반독점 문제와 관련해 조직을 꾸려 조사에 나섰고 중국은 지난해 알리페이·위챗페이 등을 겨냥해 비금융사가 고객 결제자금을 임의로 투자할 수 없도록 규제를 신설했다. 한국금융학회·한국경제학회 회장을 지낸 김경수 성균관대 교수는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 소비자 보호 등의 문제가 걸린 만큼 금융 영역에 들어왔다면 기존 금융기관과 같은 건전성 규제를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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