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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인문학] 엄마 찾는 소년, 韓 아동문학 원조가 되다

■학교서 배우지 않은 문학이야기

-이보상 번역 ‘이태리 소년’ (1908)

박진영 성균관대 교수·국어국문학

에드몬도 데 아미치스 원작 '쿠오레'

건강한 어린이의 미덕·가치 총망라

국내선 '엄마찾아 삼만리'로 더 유명

빈곤·대신 '효' 주제 교육소설로 소개

쿠오레 초판(1886)




어린이들에게 가장 오랫동안 널리 읽힌 동화는 무엇일까. 이솝 우화? 그림 형제? 안데르센? 뜻밖에도 이탈리아 작품이다. 더 놀라운 것은 학교 이야기라는 사실이다.

초등학교 4학년 소년 엔리코가 개학하는 날 시작해서 새 학년 진급시험 결과가 발표되는 날 끝나는 이야기. 바로 에드몬도 데아미치스의 ‘쿠오레’라는 작품이다. 쿠오레는 사랑이나 마음이라는 뜻인데, 우리에게는 ‘사랑의 학교’라는 제목으로 훨씬 유명하다. 학교와 사랑이라니 왠지 달갑지 않다.

에드몬도 데아미치스


‘사랑의 학교’에는 엔리코의 일기, 가족과 주고받는 편지, 담임선생님이 매달 들려주는 이야기 등을 포함해 총 100편이 담겨 있다. 서양 학기제에 따라 10월17일부터 이듬해 7월10일까지 이야기가 이어진다. 한마디로 소년의 학교생활과 친구들, 가족, 이웃, 국가와 민족을 둘러싼 나날의 이야기다.

학교생활이란 언제 어디나 갑갑하고 우울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열 살짜리 어린 소년이 겪는 소소한 일상을 그린 이 작품이 애국심과 민족정신을 잘 담아낼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오랜 전쟁 끝에 이탈리아가 비로소 하나의 왕국으로 통일된 직후였기 때문이다. 기실 ‘사랑의 학교’가 전하는 교훈은 한둘이 아니다. 용기·성실·근면·겸손·양보·열정·용서·예의·양심·정의·균형·우정·배려·협동·감사·신뢰·존중·희망·화합·단결·연대·평등·박애·희생·헌신 등등.

말하자면 이 작품은 밝고 건강한 어린이, 건전한 미래의 시민에게 기대할 법한 거의 모든 미덕과 가치를 총망라한 셈이다. 그러니 지금까지 이 작품이 번역되지 않거나 읽히지 않은 시대란 없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정작 ‘사랑의 학교’에 실린 이야기 중에서 각별하게 명성을 날린 것은 학교 이야기가 아니다. 제노바의 소년이 대서양을 건너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엄마를 찾아 헤매고 떠도는 눈물겨운 이야기. 학교 선생님이 들려준 5월 이야기 ‘엄마 찾아 3만 리’다. 소년 마르코는 가난한 집 막내아들이며 엄마가 먼 나라로 떠난 까닭은 외국인 가정부, 즉 여성 이주노동자이기 때문이다.

가난한 소년의 기구한 고생담이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방영된 적이 있는 197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 덕분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훨씬 오래전인 대한제국 시기부터 알려졌으니 100년이 훌쩍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이보상 ‘이태리 소년(1908)’




마르코 이야기가 ‘이태리 소년’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번역된 것은 1908년. 원작자 에드몬도 데아미치스가 세상을 떠난 해다. ‘이태리 소년’은 구한말의 계몽 지식인 이보상에 의해 빈곤이나 유랑 이야기가 아니라 ‘효’를 주제로 한 교육소설이라 소개됐다. 망국을 코앞에 둔 탓이었거니와 이 책이야말로 한국에 들어온 최초의 아동문학이다.

이정호 ‘사랑의 학교(1929)’


본격적인 번역도 오래 걸리지 않았다. 1928년 고장환이 ‘쿠오레, 사랑의 소년’을 내놓았고 1929년 이정호가 ‘사랑의 학교’라는 제목을 달았다. 고장환은 선생님이 매달 들려주는 이야기 9편을 추려 선보였다. 이정호는 100편의 이야기를 모두 완역했다. 두 권 다 머리말을 붙인 소파 방정환은 어릴 때 애독한 책이자 일기에 가장 많이 기록을 남긴 작품이라 추천했다.

학생사가 발행한 ‘사랑의 학교(1946)’


‘사랑의 학교’는 식민지에서 해방되자마자 다시 번역됐고 오늘날까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노릇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과연 사랑이 넘치는 학교가 있었던가.

마르코가 엄마를 찾아 떠돌아다닐 때 조선의 아이들은 학교라는 것을 구경해보지도 못했다. 엔리코가 부모·선생님·동무·이웃과의 관계를 통해 사회와 공동체를 배울 때 식민지 학교에서는 제복을 입고 칼을 찬 훈도가 제국의 노예를 훈육했다. 월사금을 내지 못하면 혹독한 매질이나 추방이 기다렸다. 해방된 후에도 도시락은 공평하지 않았으며 사랑은커녕 촌지와 체벌이 난무했다.

사랑의 학교란 지나간 추억이 아니라 꿈이자 상상력이다. 번역은 도래하지 않은 미래를 꿈꾸게 하며 소년·소녀는 문학을 먹고 자란다. 학교가 아름다운 것은 자유롭고 평등하며 민주적일 때뿐이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어린이들에게 학교란 무엇인가. 와이파이 교실은 우정과 사랑을 약속해줄까. 이주노동자 2세나 장애인에게 학교는 어떤 시간으로 기억될 것인가. 차별과 억압이 아니라 꿈과 사랑을 상상할 수 있을까. 올가을에는 제날짜에 등교할 수 있는 일상을 손꼽아 고대하면서 새로운 시대의 학교를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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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규 기자 여론독자부 sk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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