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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실'로 얽어낸 죽음의 공포...삶의 근원을 묻다

종로 가나아트갤러리서 전시회

'제2 쿠사마 야요이'로 주목 받아

인간의 불안한 내면 작품에 투영

주말관객 50명→300명으로 급증

일본서도 60만명 관객 끌어모아

28일 아침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갤러리를 방문한 젊은 관람객들이 시오타 치하루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종로구 평창동의 가나아트갤러리. 평소 주말 방문객이 50명 안팎이던 이 곳에 지난 25일 200명, 26일에는 300명의 관객이 다녀갔다. 평일 하루 평균 20명 수준이던 관람객은 150~170명을 웃돌며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지난 2002년 평창동으로 이전 개관한 가나아트센터는 호젓한 공간에서 차분하게 작품을 관람하는 분위기를 이어왔기에, 전시 오프닝 등 특별한 행사를 제외하고는 이처럼 대규모 관람객이 몰리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우려라는 악재와 장마철의 불편함, 대중교통 접근성이 낮은 평창동 입지라는 삼중고를 뚫고 관객들이 전시장으로 몰리는 이유는 오직 하나, 전위적인 작품들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일본의 작가 시오타 치하루(48)의 작품을 보기 위해서다. 가나아트갤러리의 최윤이 전시팀장은 “매 전시마다 방문객 수를 일일이 체크하지 않아 정확한 수치비교는 어렵지만 최근 5년간 이처럼 관객이 많은 것은 처음”이라고 전했다. 28일 아침에는 갤러리 문을 열자마자 배우 류승룡 등이 방문해 작품을 감상했다.

핏줄을 이어놓은 것 같은 시오타 치하루의 붉은 실 설치작품 ‘비트윈 어스(Between Us)’는 삶과 죽음, 인연의 근원적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시오타 치하루가 누구길래?=일본 오사카 태생의 시오타 치하루는 인간의 유한함과 그에 따르는 불안한 내면을 작업의 소재로 삼았다. 그는 어린 시절 할머니의 무덤에서 느낀 공포, 이웃집에서 일어난 화재의 기억을 작업에 투영했고, 특히 두 번의 암 투병으로 겪은 삶에 대한 고민과 죽음에 대한 공포가 특유의 작품세계를 형성했다. 대표작은 붉은 실을 팽팽하게 잡아당겨 공간 전체를 뒤덮는 설치작품인데, 마치 자궁 속에 들어간 듯한 묘한 느낌을 경험하게 한다. 핏줄 같은 실은 낡은 배, 오래된 의자에서 뻗어 나오기도 하는데 누군가가 사용했던 물건을 통해 연결과 순환, 인연 등을 감지할 수 있다. 전시장 한 켠에 큼지막하게 설치된 ‘아웃 오브 마이 바디(Out of my body)’는 부드러운 가죽을 칼로 도려낸 후 천장에 걸어놓은 형태다. 항암치료를 받는 과정이 마치 피부를 칼로 도려내듯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담은 것이 마치 피부처럼, 혹은 떨어지는 핏물처럼 길게 늘어져 있다. 이 같은 작품세계로 그는 프랑스 작가 루이스 부르주아를 떠올리게 하는 동시에 ‘제2의 쿠사마 야요이’로 불린다. 전시장에서 만난 한 관람객은 “예전에 어떤 잡지에서 시오타가 세계 미술가 5위 안에 꼽힌 작가로 소개된 것을 본 것이 깊은 인상을 남겼고, 그의 전시가 서울에서 열린다기에 찾아왔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일본 도쿄 롯폰기 모리미술관이 개최한 시오타의 대규모 개인전은 4개월간 60만명의 관객을 끌어모으며 화제를 일으켰다. 이후 부산시립미술관이 모리미술관과 공동기획해 국내 최초로 대규모 시오타 개인전을 마련해 지난해 12월 17일 개막했으나 코로나19 여파로 미술관이 문을 닫는 바람에 제대로 선보이지 못했다.

평창동 가나아트갤러리에서 한창인 시오타 치하루 개인전 전경. 왼쪽의 붉은색 작품은 항암치료의 살 에이는 고통을 승화시켜 표현한 ‘아웃 오브 마이 바디(Out of my body)’이다.




시오타 치하루의 판화 ‘팔로우 더 라인(Follow the line·왼쪽부터)’과 ‘스테이트 오브 비잉(State of Being)’


시오타 치하루 ‘셀(Cell)’


시오타 치하루의 ‘스테이트 오브 비잉(State of Being)’. 부제는 ‘열쇠가 있는 상자(Box with keys)’이다.


◇왜 이렇게 열광하나?=지난해 3~8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데이비드 호크니의 대규모 특별전은 국내에서 열린 단일 미술전시로는 최다 기록인 37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는 모네·마티스·고흐·샤갈 등 해외 근대 거장의 전시로 쏠렸던 관객의 관심이 현대미술로 확장됐음을 확인시켰다. 당시 미술관 측의 분석에 따르면 관람객들은 스스로 작가에 대해 연구·학습하고 미술관을 찾는 경우가 많았으며 2030세대가 주도적으로 가족관람을 이끄는 등의 변화가 포착됐다. 1~2시간 긴 줄을 서야 하는데도 불만 없이 기다리는 관람문화의 발전상도 확인시켰다. 최근 금호미술관에서 열렸던 김보희 개인전과 시오타 치하루의 전시도 이 연장선상에 있다. 자연 혹은 삶 등 공감할 수 있는 작품 내용이 관객의 마음을 움직였고, 기꺼이 줄에 서서 거리를 유지하며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문화의 변화까지 보여주는 중이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2년에 한 번 집계·발표하는 ‘문화향수실태조사’에 따르면 미술전시 관람률은 2012년 10.2%에서 2018년에는 15.3%까지 높아졌다. 최윤이 팀장은 “트렌디한 젊은 관람객의 증가가 눈에 띈다”면서 “코로나19 때문에 적극적으로 홍보를 못했는데도 작가의 기존 팬층이 워낙 두텁고 SNS 등으로 입소문이 나고 있다”고 말했다.

관람객의 증가 뿐만 아니라 작품 판매도 호조세다. 가나아트갤러리 평창동 본관 외에 한남동의 가나아트나인원에서도 전시가 열리고 있는데 출품작 대부분이 개막과 동시에 팔려 나갔다. 나인원 전시는 8월2일까지, 평창동에서는 8월23일까지 열린다.
/글·사진=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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