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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인문학] 붉게 물든 백일홍엔 사부곡이 흐르고…

■나무로 읽는 역사 이야기

-전남 담양 명옥헌 배롱나무 원림

강판권 계명대 사학과 교수

천연두로 일찍 죽은 아버지 위해

아들 오명중이 명옥헌 원림 조성

두곳에 연못 파고 배롱나무 심어

태양 작열하는 여름철 하늘·연못

배롱나무꽃 100일간 붉게 물들어

조상 향한 丹心의 상징적 명소로

전남 담영 명옥헌에서 바라본 연못 주변의 풍경. 건너편 배롱나무에 핀 붉은 꽃이 인상적이다.




부처꽃과의 갈잎떨기나무인 배롱나무는 우리나라 수목 문화의 상징 중 하나다. 배롱나무는 궁궐과 향교 및 서원, 그리고 정자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배롱나무꽃은 여름 내내 함께할 수 있다. 대부분 나무의 꽃은 열흘을 넘기지 못하지만 배롱나무꽃은 100일 정도 피어 있기 때문이다. 배롱나무를 우리말로 백일홍(百日紅)이라 부르는 이유다.

배롱나무의 다른 이름은 ‘자미화(紫薇花)’다. 자미화는 ‘자미제좌(紫薇帝坐)’에서 보듯 황제를 의미한다. 그래서 배롱나무를 궁궐에 심었다. 중국 당나라 현종은 자신이 근무하는 중서성에 이 나무를 심고 자미성(紫薇省)이라 불렀다. 이 같은 사례는 고려 시대 목은 이색의 ‘종이를 가져오게 하여 성랑(省郞)에게 편지를 써서 출사(出謝)하기를 요구하다(覓紙作省郞書求出謝)’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인 시켜 이웃집 종이 얻어 오게 하여(赤脚南린喚楮生)

중서성 아래에 내 깊은 정성 부치노라(紫微花下寄中情)

근년 들어 전체 삼십사 개의 도부에서(年來三十四都府)

반드시 사람마다 반기를 들진 않았었네(未必人人親弄兵)

우리나라 조선 시대 성리학자들의 문집에 등장하는 시에서도 배롱나무를 자미화로 부른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배롱나무의 또 다른 상징은 일편단심이다. 이는 배롱나무의 꽃이 붉기 때문이다. 붉은색은 변하지 않는 상징 색깔이다.



전국에서 일편단심을 드러낸 대표적인 공간은 조상 묘소다. 우리나라에서 조상의 묘소에 심은 배롱나무를 대표하는 곳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에 위치한 동래정씨 시조 정문도(鄭文道) 묘이다. 이곳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800살 천연기념물 배롱나무(제168호)가 살고 있다.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명옥헌의 모습.


전남 담양의 명옥헌(鳴玉軒, 명승 제58호)은 우리나라 원림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뿐 아니라 원림의 배롱나무가 후손들의 조상을 향한 일편단심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명옥헌은 남포(南圃) 김만영(1624~1671)의 ‘남포선생집’에 따르면 돌샘의 물소리가 옥 같아서 붙인 이름이다. 명옥헌 원림을 만든 사람은 이정(以井) 오명중(吳明仲, 1619~1655)이다. 그가 명옥헌을 지은 것은 아버지 명곡(明谷) 오희도(吳希道, 1584~1624)를 위해서다. 외가가 있는 이곳에 살았던 오희도는 인조반정 후에 문과에 급제해 한림원 기주관이 됐으나 1년 만에 천연두를 앓다가 죽고 말았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인조실록’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인조는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관을 지급했다. 오명중은 아버지가 돌아가자 부친이 젊은 시절 보냈던 터의 두 곳에 못을 파고 배롱나무를 심었다. 가사문학의 대가이자 서인의 영수였던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아들이자 인조 때 대제학을 지낸 정홍명(鄭弘溟, 1582~1650)의 ‘기암집속집(畸庵集續)’에 ‘명옥헌기(鳴玉軒記)’가 수록돼 있다.

나는 명옥헌의 여름과 겨울 풍경을 보았다. 여름철 명옥헌은 배롱나무의 꽃이 태양이 작열하는 여름의 하늘과 연못의 물을 붉게 물들인다. 이곳 배롱나무의 붉은 꽃은 40세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향한 오명중의 사부곡과 같다. 명옥헌에서 관심을 가질 것은 배롱나무만이 아니라 소나무와 느티나무, 그리고 연못이다. 소나무와 느티나무는 성리학자들이 아주 좋아한 나무다. 소나무는 정절을 의미하고 느티나무는 학자수인 회화나무의 문화변용이다. 연못은 연꽃을 심은 곳이다. 그러나 지금 명옥헌의 연못에는 연꽃이 없다. 명옥헌에 연꽃을 심었다는 사실은 ‘남포선생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명옥헌을 비롯한 우리나라 성리학 공간의 연못에 연꽃을 심은 것은 중국 북송시대 염계(濂溪) 주돈이의 ‘애련설(愛蓮說)’ 때문이다. 연꽃은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살기 위한 성리학자들의 공부 대상이었다. 북송시대 황정견(黃庭堅)은 주돈이의 인품을 ‘광풍제월(光風霽月)’, 즉 ‘맑은 날의 바람과 비 갠 뒤의 달’에 비유했다. 그래서 경북 영주 소수서원의 제월교와 광풍정, 전남 담양 소쇄원의 제월당과 광풍정에서 보듯 우리나라 성리학 공간에는 광풍제월을 모방한 문화재가 적지 않다. 그런데 이곳에 연꽃이 없는 것은 후손들이 연꽃의 성리학적인 의미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오류는 전국의 성리학 공간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아울러 경북 영주 소수서원과 경북 안동 도산서원 및 병산서원, 경남 함안 남계서원 등에서 보듯이 우리나라 세계문화유산 서원에서조차도 연꽃 대신 수련을 심었다. 이 같은 오류 사례는 단순히 옥에 티가 아니라 성리학 관련 문화재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하루빨리 고쳐야 한다.

강판권 계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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