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물가가 들썩이고 있다. 긴 장마로 논·밭·농장 할 것 없이 수해가 발생하면서 출하량이 급감하자 도매가격이 출렁였고 전통시장과 집 앞 마트에까지 고(高)물가가 들이닥쳤다. 제5호 태풍 ‘장미’까지 북상 중인데다 이후 폭염도 예고돼 있어 밥상 물가는 더 치솟을 가능성이 크다.
서울시는 지난 2012년 이후 9년 만에 수도요금 인상을 검토하고 있고 한전은 전기요금 체계 개편과 맞물려 요금 인상을 저울질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 상한제 등 ‘임대차 3법’이 본격 시행됨에 따라 주거비까지 상승하면서 서민 생활이 더욱 팍팍해지고 있다.
9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7일 현재 전국 평균 배춧값(소비자 가격)은 포기당 5,831원이다. 평년(4,177원)보다 39.6% 오른 가격이고 7월 초(4,137원)와 비교하면 40% 넘게 뛰었다. 100g당 1,200원대였던 청상추 가격도 1,805원으로 껑충 뛰었다. 장마 전까지만 해도 1,200~1,300원 수준이었다. 이밖에 대파와 양배추·시금치·당근 등 채소 가격이 전반적으로 크게 올랐다.
지난해 이맘때 484톤이던 서울 가락시장 배추 반입량은 최근 296톤으로 급감했다. 서울 강서농산물도매시장에서 채소류를 거래하는 한 도매업자는 “보통 배추 1망(3포기)을 1만원 정도에 샀는데 요즘에는 1만7,000원으로 올랐다”며 “장마가 끝나도 물을 먹은 배추는 출하가 안 되기 때문에 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최근 물가관계차관회의에서 “장마 이후 태풍·폭염 등 기상여건 변화에 따라 농산물 수급상황이 악화하고 가격이 크게 변동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맞춤형 가격 안정대책을 준비하겠다며 대응에 나섰다.
주거비 부담도 커질 가능성이 크다. 당정이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며 밀어붙인 임대차 3법, 보유세 인상은 주거비 부담을 크게 키울 것으로 관측된다. 주거 등에 지출하는 비용은 전체 가계 소비지출에서 11%(1·4분기 기준)가량을 차지하는 4대 주요 지출 항목 중 하나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올 7월 전월세 등을 포함한 주거비 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1.1%로, 전체 물가상승률 0.3%를 크게 웃돌았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집주인 입장에서는 급격한 보유세 인상 부담을 전월세 가격에 전가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기요금 인상 논의도 진행 중이다. 공공요금으로 서민 살림에 직결되는 전기료는 2013년 주택용이 2.7%, 산업용은 6.4%씩 오른 뒤 7년 동안 동결 상태다. 정부가 물가 안정을 이유로 전기료 인상을 막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전력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며 전기료 체계 개편을 올해 하반기로 예고한 상태다.
개편의 핵심은 전기 생산에 쓰이는 석유 등 연료 가격을 전기료에 바로 반영하는 ‘연료비 연동제’ 도입이다. 현재 국내 전기료는 원가를 반영하지 않아 연료비가 높든 낮든 동일하게 싸며 한전 실적은 유가가 오르면 큰 손실을 입고 내리면 실적이 개선되는 ‘널뛰기’를 이어가는 구조다. 김종갑 한전 사장은 2018년 “두부값(전기료)이 콩값(연료비)보다 더 싸지게 됐다”며 연료비 연동제 도입 필요성을 강조한 것도 이 같은 상황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국제유가가 지난해보다 평균 60% 수준으로 감소한 만큼 지금이 연료비 연동제 도입의 적기라는 분석도 많다. 정부는 2011년에도 연동제 도입을 추진했으나 유가 상승기와 맞물려 도입을 미루다 2014년 결국 도입 계획을 취소했다.
다만 당분간 저유가가 지속될 것으로 점쳐지는 만큼 전기료 체계 개편이 당장 전기료 인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부터 석탄 대신 액화천연가스(LNG)를 더 활용하는 미세먼지 감축 방안 역시 최근 유가 하락에 따라 LNG 가격이 떨어져 당분간 전기료 인상 요인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세종=한재영·조양준기자 jyha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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