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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투자자의 술잔은 '계영배(戒盈杯)'다

■한영일 증권부장

저금리에 개인자금 증시로 대거 유입

코스피 연중 최고, 예탁금도 사상최대

긴 호흡으로 돈 넣는게 진짜 ‘투자자’

단기간 고수익 추구땐 ‘트레이더’일뿐

욕심 경계 ‘계영배’ 지혜 되새겨야

한영일 증권부장




개미의 전성시대다. 올 들어 증시에 발을 내민 동학개미, 큰돈을 쥔 슈퍼개미, 해외주식을 노리는 원정개미, 유가에 투자하는 원유개미, 금에 베팅하는 황금개미까지. 그야말로 주식시장에 ‘물’이 들어왔다. 신규 계좌가 연일 수만개씩 터지고 거래대금은 하루 30조원을 오르내린다. 코스피지수는 연중 최고치를 달리고 주식에 곧장 쏠 준비가 된 고객예탁금도 50조원을 넘어섰다. 증권사들은 1·4분기 악몽에서 벗어나 급증하는 이익에 표정관리를 해야 할 지경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불러온 ‘증시의 아이러니’다.

제로금리 시대에 최악의 바이러스 전쟁을 위해 풀린 돈들이 주식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넘사벽’이 돼버린 서울 아파트를 사기 힘든 마당에 주식으로라도 한몫 잡아보겠다는 애달픈 청춘의 야망도 여의도로 향한다. 개미떼의 습격을 받은 종목들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구치고 대형주들도 하루에 10%는 우습게 오른다. 1년간 은행에 넣어봤자 1%대 금리가 고작인데 단 하루 만에 10% 수익이라니. 주식의 달콤함을 맛본 초보개미들은 자신이 마치 연금술사라도 된 것처럼 우쭐함을 느낄 만도 하다.

유동성의 폭풍을 탄 코스피지수는 어느덧 2,400포인트를 넘고 이제 사상 최고치인 2,600선도 그다지 멀지 않게 느껴질 만큼 올랐다. 성급한 이는 ‘코스피 3,000’도 이야기하고 어떤 이는 이제 ‘파티’를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 오고 있다고도 한다. 예전에 애 업은 아줌마가 객장에 나타나면 ‘꼭지’라는 증시의 격언이 있었다. 그러나 2020년 개미는 유튜브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새 플랫폼에서 각종 정보를 획득하며 이전과는 확연히 차별화된 수익률을 자랑하며 중요한 매수 주체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쯤에서 한 번쯤 스스로 되물어볼 필요가 있다. ‘나는 투자자(invester)인가, 트레이더(trader)인가.’

기업의 본질가치인 펀더멘털을 보고 돈을 넣는 이는 단기간의 수익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먼 길을 가는 나그네가 발에 치이는 한두 개의 돌부리에 연연해하지 않듯이 말이다. 이들은 투자자다. 하지만 비싸게 사서 조금 더 비싸게 파는 이는 ‘트레이더’다. 이들에게 기업의 가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단지 내가 산 주식을 조금이라도 더 높은 가격에 사 줄 수 있는 그 누군가만 있으면 된다. 비정하지만 이것이 베팅의 법칙일지도 모른다.



무작정 투자자가 선(善)이고 트레이더는 악(惡)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단지 내가 지금 하는 매매의 정체성을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주식매매는 트레이더처럼 하면서 혹시 스스로 투자자로 오인하고 있다면 곤란하다. 앞으로 또다시 닥쳐올지 모를 변동성에 적절히 대처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최근 한 증권사 사장은 “요즘 콜센터 직원 얘기를 들어보면 고객 한 사람을 응대하는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린다고 합니다. 주식에 관한 기초지식이 없는 ‘주린이(주식 초보자)’들이 많기 때문이죠”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 역시 경영자 입장에서 고객이 늘어나는 것은 좋지만 무작정 증시에 뛰어든 이를 보면 살얼음판 위를 걷는 사람처럼 불안하다는 것이다.

조선 후기의 거상, 김상옥은 ‘계영배(戒盈杯)’를 항상 곁에 뒀다고 한다. 잔의 7부가 차면 나머지 술이 밑으로 흘러내리는 잔으로 욕심과 지나침을 경계하기 위해서였다. 달도 차면 기울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다. 하지만 그 타이밍을 재빨리 파악하고 대응하기란 쉽지 않다. 투자의 귀재라 불리는 워런 버핏이 했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주식투자의 첫번째 원칙은 ‘잃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는 첫번째 원칙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원금의 절반이 깨질 경우 원상복구 하기 위해서는 그 두 배의 수익률이 필요하다. 고수익을 좇는 것도 좋지만 부디 ‘잃지 않는’ 개미가 좀 더 많아지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hanu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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