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원(中原)문화의 중심지이자 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한 충주는 전국 8도 중 유일하게 바다를 접하지 않은 충북 내륙지역에 속하면서도 ‘물의 도시’로 불리는 곳이다. 남한강과 달천강이 도시를 가로질러 흐르기도 하지만 정작 충주를 물의 도시로 만든 것은 강이 아닌 호수다.
충주호는 남한강 물길을 막아 댐을 건설하면서 조성된 국내 최대 규모의 인공호수다. 댐 건설로 충주부터 남한강 상류인 충북 제천·단양까지 1만여가구가 수몰됐으니 고향을 잃은 이주민에게는 아픈 기억의 장소이겠지만 관광객에게는 특별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한때 ‘청풍(제천의 옛 지명)호’ ‘단양호’ 등 명칭을 놓고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지만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것은 충주호다. 그 이유는 호수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풍경이 충주에 집중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충주호 수위가 길목까지 차오른 8월, 충주에 다녀왔다.
충주여행의 출발지는 ‘충주호 종댕이길(총 8.5㎞)’이다. 충주는 남한강 물길을 따라 9개의 ‘풍경길’을 조성했는데 그중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곳이 종댕이길이다. 예스럽고 익살스러운 분위기까지 자아내는 ‘종댕이’라는 명칭은 수몰돼 사라진 상종마을과 하종마을에서 따왔다. 본래 종댕이란 짚이나 싸리 등으로 엮은 주둥이가 좁고 밑이 넓은 바구니를 뜻하는 말로 인근 계명산도 과거에는 종댕이산으로 불렸다고 한다. 종댕이길은 계명산과 남산 사이의 고개 마즈막재삼거리에서 시작된다. ‘마즈막재’는 제천과 단양의 죄수들이 충주에서 사형 집행을 받기 위해 넘어오던 고개로 이 고개를 넘으면 다시는 살아 돌아갈 수 없어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죄수들이 넘었던 마즈막재를 반대 방향으로 내려가면 종댕이길이다. 마즈막재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데크가 놓인 대로 따라가면 자연스레 코스에 합류하게 된다.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면 아담한 생태연못을 지나 본격적으로 계명산으로 들어가는 숲길이다. 나무 사이로 충주호의 푸른 물이 내려다보이고 도심에서는 보기 어려운 다람쥐·야생화도 만나볼 수 있다. 길의 반환점에는 출렁다리가 놓였다. 밝은 주황색으로 칠해진 다리는 한여름의 짙은 녹음과 에메랄드빛 충주호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단풍으로 물든 가을 계명산과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운 경치를 연출해낸다고 한다.
길의 시작과 끝은 ‘깔딱 고개’로 불릴 만큼 경사가 급한 계단이지만 이를 제외하면 코스 대부분이 완만한 평지로 누구나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 아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방문객이라면 종댕이길을 축소해놓은 심항산(계명산의 옛 이름) 전망대를 중심으로 이어진 숲길거리 3개 코스(가온길·봉수터길·체험길)를 추천한다. 총 2.8㎞ 구간으로 어디 길을 선택해도 충주호를 내려다보며 걸을 수 있다. 장마로 일부 통제된 구간이 있을 수 있으니 출발 전 반드시 숲해설안내소에 들러 통제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종댕이길에서 땀을 흘렸다면 시원한 동굴에서 더위를 식혀 보자. 마즈막재에서 충주호수로를 따라 남산 방면으로 가다 보면 10분 거리에 활옥동굴이 있다. 이곳은 백옥·백운석 등을 캐던 갱도를 동굴로 바꿔 지난 2018년 처음 문을 연 인공동굴이다. 어둡고 삭막한 탄광이 아니라 동굴 내부가 백옥으로 뒤덮여 우윳빛을 띠는 것이 특징이다. 동굴 내부는 바깥과 20도 이상 온도가 차이 나 시원함을 넘어 추위를 느낄 정도다. 평균 온도 13도에, 습도 87%를 유지하고 있어 와인을 보관하기에 매우 적합한 환경이라고 한다. 동굴 안에서는 주로 공산국가에 납품해오던 몰도바 와인을 마시고 동굴 내 호수에서 보트를 타는 이색 체험도 할 수 있다.
고구려 때 ‘나라의 벌판’이라는 뜻으로 국원성(國原城), 신라 때 ‘가운데 벌판’이라는 뜻으로 중원이라고 불린 충주는 고구려와 신라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도시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유적이 중앙탑이라고 불리는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국보 6호)이다. 신라 원성왕(795~798) 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탑은 찬란한 중원문화의 꽃이다. 신라 왕경인 경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대형석탑으로 신라시대 7층 석탑 중에서도 가장 높고 큰 규모를 자랑한다. 원성왕은 국토의 중앙이 어디인지 알아보기 위해 두 사람을 한날한시에 남과 북 끝 지점에서 출발시켜 만난 곳에 이 석탑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남한강변에 높게 축조된 토단 위로 올라서면 인근이 한눈에 들어온다. 왜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삼국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는지를 짐작해볼 수 있다.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주변으로는 중앙탑사적공원이 조성돼 있다. 남한강변을 따라 펼쳐지는 너른 잔디밭과 소나무 사이로 ‘문화재와 호반 예술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조각품 26점이 배치돼 있다. 공원에는 충주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충주박물관과 밤이면 오색찬란한 조명을 비추는 수변 산책로 탄금호무지개길, 충주누암리고분군, 세계술문화박물관 등이 자리하고 있고 차를 타고 조금만 이동하면 충주고구려비전시관, 청룡사지, 창동리 마애여래상, 고구려천문과학관이 방문객을 맞는다. 햇볕이 뜨거운 한낮보다는 해질 무렵 찾아 한적하게 산책하기를 추천한다.
/글·사진(충주)=최성욱기자 secre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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