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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카뮈가 그린 ‘페스트’ 이후의 디스토피아





“공기를 통한 일체의 전염을 피하기 위하여, 말하는 것 자체도 감염의 수단이 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시민 각자는 초(醋)를 먹인 솜을 항상 입 속에 물고 다닐 것을 명령한다. 이 조치는 질병을 예방할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분별 있는 언동과 침묵을 유도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 순간부터 사람들은 저마다 입 속에 손수건을 틀어넣고 사람들의 목소리와 오케스트라의 음량이 다 같이 줄어든다. (…) 결국은 불룩해진 사람들의 입이 봉해진 가운데 완전한 침묵 속에서 마지막 팬터마임이 진행된다. 마지막 성문이 쾅 하고 닫힌다.) “아, 비참하도다! 비참하도다! 우리만이 페스트와 함께 외롭게 남았으니! 마지막 성문도 닫혀버렸네!” (알베르 카뮈, ‘정의의 사람들·계엄령’, 2000년 책세상 펴냄)

1947년 소설 ‘페스트’로 큰 성공을 거둔 카뮈는 이듬해 페스트가 장악한 도시 이야기를 희곡으로 새롭게 써서 무대에 올린다. 그러나 연극 ‘계엄령’은 초연 당시 소설 ‘페스트’와는 전혀 다른 길을 간다. “아마도 이처럼 완전한 혹평을 선사받은 극은 거의 없을 것이다!” 비난과 조롱이 난무했다.



‘계엄령’은 별 탈 없는 시대의 시민들이 보기엔 불쾌하고 비현실적인 연극이었을 것이다. 이 희곡의 배역에 첫번째로 쓰여 있는 주연은 ‘페스트’이다. ‘계엄령’에서 페스트는 배경이나 조건이 아니라 완전한 주역이다. 페스트가 직접 인간으로 현현해 무대에 올라와 최고 권력자가 되고, ‘데스노트’를 쥔 채 사람들의 이름에 줄을 그어 목숨을 앗아간다. 사람들의 일상은 비참하게 뒤틀려간다. 식초를 묻힌 솜을 입에 틀어막고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은 살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페스트’가 계획한 대로 질서 있게 죽어가기 위해 살아간다. 2020년 8월, 다시 코로나19가 우리 일상의 무대에서 배경이 아닌 주역이 되려 하고 있다. 지금 멈춰야 한다. 카뮈가 그린 ‘계엄령’ 디스토피아는 망상이 아니었다. /문학동네 편집팀장 이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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