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오후9시54분(현지시각) 뉴욕 맨해튼 할렘의 렉싱턴가를 걷던 35세 남자가 왼쪽 다리에 총을 맞았다. 경찰은 피해자 옆을 지나던 검은색 차량에서 뚜렷한 이유 없이 총을 쐈다고 밝혔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말 그대로 ‘묻지 마’ 총기 사건이었다.
20일에는 뉴저지 애즈버리에서 다른 이들과 총격전 중에 집 앞에 나와 있던 네 살짜리 여자아이를 다치게 한 27세 남성이 체포됐다. 유탄에 맞았다지만 어린아이가 피해를 입었다는 점에서 지역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으로 촉발된 시위 이후 미국 대도시를 중심으로 강력범죄가 폭증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이달 9일까지 뉴욕경찰의 범죄자 체포 건수는 8만4,930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9% 감소했다. 반면 살인 사건은 244건으로 전년보다 29% 증가했고 총기 난사 피해자는 1,017명으로 84.6% 불어났다. WSJ는 “범죄 증가세가 최근 20여년 동안 가장 뚜렷하다”며 “최근 4주로 따지면 총격 사건은 전년 대비 201% 증가했고 총격 피해자는 165%, 살인 사건은 50% 늘었다”고 전했다.
이 같은 현상은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5월부터 6월까지 미국 주요 20개 도시의 살인율이 37% 증가했다. 살인은 주로 시카고와 필라델피아·밀워키 등 3개 도시에서 나타났다. 시카고에서는 6월에만 살인이 전년과 비교해 78%, 총격 사건은 75% 늘었다. 필라델피아도 6월에 살인 사건이 32% 많아졌다. 데일리메일은 “폭력범죄의 급증은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에 따른 전국적인 항의시위가 일어났을 무렵부터 시작됐다”며 “일부 지역 경찰들은 흑인시위로 반경찰 정서와 그에 따른 사기저하로 체포율이 감소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뉴욕경찰에서 볼 수 있는 체포 건수 감소가 전국적으로 진행되는 모양새다.
코로나19에 따른 경기침체도 원인이라는 의견도 있다. 코로나19로 교통량과 사람들의 활동이 줄었지만 셧다운(폐쇄)에 따른 실업이 급격히 늘면서 강력범죄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미국의 7월 실업률은 10.2%로 여전히 두자릿수다. 총기 난사가 증가한 시점이 셧다운이 해제되는 때와 맞물려 있다는 분석도 있다.
반면 일각에서는 경찰이 의도적으로 강력범죄를 부추긴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 이후 예산축소와 인력감축 요구가 빗발쳐 경찰이 이를 피하기 위해 범죄를 방관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경찰의 체포 건수가 감소한 만큼 강력범죄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강력범죄와 달리 일반범죄는 줄어들고 있는 점도 흑인시위와 범죄 증가에 연관성이 없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뉴욕경찰 출신인 에릭 애덤스는 WSJ에 “일부 지역의 경찰관들이 고의적으로 업무를 느리게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당국은 범죄가 급증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법 집행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것인지를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뉴욕만 해도 빌 더블라지오 시장이 경찰 예산 10억달러(약 1조1,800억원)를 삭감하고 뉴욕경찰 산하 사복경찰 조직인 범죄예방팀을 해체하겠다고 한 상태다. 로스앤젤레스(LA) 역시 최대 1억5,000만달러의 예산을 줄이겠다고 밝힌 바 있다. /뉴욕=김영필특파원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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