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항암치료의 새로운 전략을 개척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는 본원의 바이오및뇌공학과와 생명과학과 공동연구팀이 항암제의 표적 단백질을 전달체로 이용하는 역발상 연구결과를 내놓았다고 23일 밝혔다. 항암제가 표적 단백질에 결합하는 원리를 역이용해 항암 치료를 위한 단백질 나노튜브 전달체 ‘TNT’를 개발해 항암 효능을 실험으로 확인했다는 것이다.
우리 몸속 세포가 분열할 때 염색체들은 세포 한가운데에 정렬해 두 개의 딸세포로 나눠진다. 이 염색체들을 끌어당기는 끈은 ‘미세소관(microtubule)’이다. 미세소관은 ‘튜불린(tubulin) 단백질’로 이루어진 긴 튜브 형태의 나노 구조물이다. 항암약물중 ‘미세소관 표적 치료제’는 암세포 미세소관에 결합해 끈 역할을 방해함으로써 암세포의 분열을 억제하고 사멸토록 한다. 튜불린 단백질에는 이 약물이 강하게 결합하는 고유의 결합 자리(binding site)가 여럿 존재한다. 연구진은 이 점에 착안해 표적 물질인 튜불린 단백질을 약물 전달체로 사용한다는 역발상의 치료방법을 구현했다.
KAIST 공동연구진이 개발한 단백질 나노튜브 전달체 ‘TNT’는 미세소관을 표적으로 하는 모든 약물을 탑재할 수 있는 만능 전달체로서의 잠재력을 지녔다고 KAIST는 전했다. 이는 약물 입장에서는 세포 내 미세소관에 결합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의료진이 항암제마다 적합한 전달체를 찾아야 했으나 이런 수고로움을 덜게 된 것이다.
연구진은 먼저 튜불린 단백질에 블록 혼성 중합체인 ‘PEG-PLL(pegylated poly-L-lysine)’을 섞어 기본적인 TNT 구조를 만들었다. 여기서 튜불린은 빌딩 블록, PEG-PLL은 이들을 붙여주는 접착제이다. 연구진은 이어서 도세탁셀(docetaxel), 라우리말라이드(laulimalide), 그리고 모노메틸아우리스타틴 E(monomethyl auristatin E) 3종의 약물이 TNT에 탑재됨을 확인했다. 이 약물들은 실제 유방암, 두경부암, 위암, 방광암 등의 화학요법에 활용되고 있는 항암제들이다. 연구팀은 탑재되는 약물의 종류와 개수에 따라 TNT의 구조가 변할 뿐 아니라 약물 전달체로서의 물리·화학적 특성도 달라진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이는 TNT가 탑재하려는 약물에 맞춰 자발적으로 형태를 변형하는‘적응형 전달체’임을 보여준다는 게 KAIST의 전언이다.
연구팀은 특히 항암제가 탑재된 TNT가 엔도좀-리소좀 경로(endo-lysosomal pathway)로 암세포에 들어가 뛰어난 항암 및 혈관 형성 억제 효과를 보인다는 점을 세포 및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적응형 만능 약물 전달체가 성공적으로 구현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연구진이 보유한 튜불린 분자 제어 기술력 때문이다. 연구진은 튜불린 단백질을 일종의 레고 블록으로 보았다. 블록의 형태를 변형하고 쌓아 올리는 방식을 제어하여, 튜브 형태의 구조체를 조립하는 노하우를 축적해왔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에서 포항 방사광 가속기의 소각 X-선 산란 장치를 이용해 TNT 구조를 나노미터(nm, 10억 분의 1미터) 이하의 정확도로 분석했다.
공동연구팀은 “이번 연구결과는 지금까지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약물 전달체를 구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또한 ”TNT는 현재까지 개발된, 또한 향후 개발예정인 미세소관 표적 치료제까지 운송할 수 있는 범용적인 전달체이며, 다양한 항암제들의 시너지 효과(synergy effect)를 기대할 수 있는 ‘플랫폼 전달체’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연구에는 KAIST 김진주·이준철 박사과정 학생이 공동 제1 저자로 그리고 전상용·최명철 교수가 공동 교신저자로 참여했다. 연구결과는 지난 20일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스(Advanced Materials)’ 표지논문으로 게재됐다. 논문명은 ‘Tubulin-based Nanotubes as Delivery Platform for Microtubule-Targeting Agents’이다.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및 한국원자력연구원, KUSTAR-KAIST 등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민병권기자 newsroo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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