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하나은행·미래에셋대우(006800)·신한금융투자 등 라임자산운용 펀드를 판매한 4곳이 ‘100% 배상’이 담긴 금융감독원의 분쟁조정안(분조안)을 수용했다. 전액 배상은 금융분쟁조정 사상 처음이다. 분조안 수용은 재판상 화해와 같은 효력이 발생해 더 이상 라임펀드를 둘러싼 다툼의 여지도 사라지게 됐다. 다만, 투자자 책임 원칙을 묻지 않는 사상 초유의 100% 배상이라는 선례가 생기면서 이를 악용하려는 문제 등도 살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27일 라임 펀드를 판매한 이들 판매사 4곳은 이사회를 개최해 일제히 분조안을 ‘수용’했다. 한 판매사 관계자는 “전액반환 권고안이 ‘요청’이 아닌 ‘명령’이 됐다”며 사실상 ‘수용’ 외에 다른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던 이사회 분위기를 전했다. 판매사가 투자자에게 배상해야 할 금액은 우리은행 650억원, 하나은행 364억원, 신한금융투자 425억원, 미래에셋대우 91억원 등 총 1,611억원이다.
이번 수용 결정은 시한을 이틀 앞둔 지난 25일 윤석헌 금감원장이 직접 쐐기를 박으면서 거스를 수 없게 됐다는 해석이다. 윤 원장은 “피해 구제를 등한시해 고객과 시장의 신뢰를 모두 잃으면 금융회사 경영의 토대가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정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경영실태평가 등에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뜻까지 내비쳤다. 앞서 윤 원장이 ‘편면적 구속력’을 언급한 데 이어 여당에서 이를 뒷받침하는 법안 발의가 이어지면서 압박의 강도는 더 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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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사 이사회도 금감원의 전방위 압박에 상당한 부담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은행은 “소비자 보호와 신뢰회복을 위해 중대한 사안이라는 점을 확인하고 수용했다”고 했고, 하나은행은 “검찰수사와 형사 재판 등이 진행 중이지만, 투자자 보호 방안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하나은행과 미래에셋대우는 라임운용을 비롯해 스와프거래로 피해를 키운 증권사를 상대로 구상권 청구와 손해배상 청구 등 법적 대응도 예고했다. 신한금투도 투자자 보호를 수용 배경으로 설명했다. 다만, PBS본부와 관련해 (신한금투에 책임을 물은 부분 등) 일부 사실 등은 수용할 수 없다고 단서를 달았다.
금융권은 당장 후유증을 우려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투자자 책임은 사라지고 운용사도 아닌 판매사만 100% 책임을 지게 되는 구조는 문제가 있다”며 “금감원이 금융 소비자를 위한다는 구실로 투자자 책임 원칙을 스스로 무너트렸다”고 말했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투자상품은 손익이 나는 특성이 있는데 일정 기간 손실만으로도 100% 배상 카드를 요구하는 블랙컨슈머가 발생할 수 있다”며 “앞으로 악성 고객을 대상으로 한 체계적인 대응 매뉴얼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종호·김지영·서지혜기자 joist1894@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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