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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스포츠문화
[로비의 그림]국보급 달항아리와 천년 도자사부터 조선화까지

서울 강남구 프리마호텔

이상준 회장 철학담긴 '호텔 속 미술관'

서울 강남구 호텔프리마의 로비에는 지난 2007년 3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12억원에 환수한 18세기 조선 백자인 일명 ‘달항아리’가 전시 중이다. /권욱기자




지난 2007년 3월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 ‘달항아리’가 출품돼 당시 미국 내 경매에 나온 조선 백자 중 최고가인 12억원(약 127만2,000달러)에 낙찰됐다. 18세기 중엽인 영·정조 시대 경기도 광주에 있던 금사리 가마에서 제작된 도자기로, 조선 도자 중에서도 백미(白眉)로 꼽히는 명품이었다. 높이 49㎝, 지름은 그보다 약간 더 큰 50㎝로 겸손하면서도 장중한 모습이 둥근 보름달 같았다. 1930년대 무렵에 한국을 떠난 듯한 이 백자는 일본의 사무라이 명문가에서 오래 소장되다 일본 고미술상을 통해 경매에 오르게 됐다. 전 세계에 20점 남짓할 것으로 추정되는 귀한 문화재임에도 외국으로 유출된 이 달항아리를 국내로 되찾아온 주인공은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에 위치한 호텔프리마㈜였다. 이상준 호텔프리마 대표이사의 안목이 결정적이었다. 그는 환수한 도자기를 전시하기 위해 호텔 로비에 작은 박물관을 마련했다. 그간 일본과 중국 등지에서 틈틈이 사들여 환수한 미공개 문화재도 함께 선보였다. ‘미술관 속 호텔’ 같은, ‘호텔 속 미술관’의 시작이었다.



호텔프리마 입구에 서 있는 조각가 박찬걸의 ‘다비드’.


호텔프리마 입구에 서 있는 조각가 박찬걸의 ‘다비드’.


영동대로를 바라보며 우뚝 선 ‘다비드’상이 첫인사를 건네는 호텔프리마. ‘다비드’를 만든 조각가 박찬걸은 르네상스의 거장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를 채 썰듯 해체한 후 재조합했다. ‘누구나 아는’ 다비드로 보이지만 켜켜이 존재하는 빈 공간에 보는 이의 새로운 상상력이 파고든다. 현관을 열고 들어서 왼쪽에 펼쳐지는 푸른 보리밭 그림은 천경자를 계승한 화가 이숙자의 ‘청맥’이다. 맞은편 벽을 차지한 희고 검은 두 점의 추상화는 가까이 다가가서 봐야 한다. 하나의 색으로 반복한 붓질이 화면을 가득 채운 단색조 회화다. 작가 안영일은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던 1957년부터 미국에서 활동하며 물빛을 탐구해 이 같은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로비 양쪽의 작품이 풀과 물로 자연의 대구를 이루는 셈이다.

안영일의 ‘워터(Water)’ 연작들.


요르그 쉬르머의 ‘위너(winner)’.


리셉션 데스크로 향하는 계단에 놓인 거대한 발(足)은 독일 작가 요르그 쉬르머의 ‘위너(winner)’라는 작품이다. 긴 구간을 달려 결승선에 도착한 승리자의 마지막 걸음이 갖는 고통과 환희가 뒤섞인 묵직함이 거친 질감의 청동조각에 담겼다. 쉬르머는 확대된 발을 통해 인물의 특징과 인간의 특성까지 보여주는 작가다.

자, 호텔프리마 로비의 아트투어는 이제 시작이다. 텁텁한 붓질이 눈앞에 길을 내고 하늘을 펼쳐놓는다. 제주화가 강요배의 ‘길 위의 하늘’이다. 제주의 역사적 상처를 자연의 생명력으로 치유한다는 평가를 받는 강요배는 대표적인 민중화가로 꼽히면서도 특유의 서정성이 폭넓은 공감대를 얻고 있다. 여담이지만 작품값 상승세가 가파른 작가라 이곳 로비에 걸린 2m 이상의 큰 작품들은 1억원을 호가한다. 호텔 옆 프리마여성전용사우나 맞은편의 프리마갤러리에는 강요배가 그린 대형 ‘천지연폭포’와 ‘정방폭포’가 나란히 전시 중이다.

호텔프리마 로비에는 강요배의 ‘길 위의 하늘’과 나란히 유럽 명품 마이센 도자기가 전시 중이다.


프리마갤러리에 전시 중인 제주화가 강요배의 ‘천지연폭포’와 ‘정방폭포’.


프리마갤러리 전시 전경.


호텔프리마 로비 내 도자 전시 박물관 옆에는 옛 사랑방을 재현해 손님을 맞는 선비의 품격과 마음 씀씀이를 보여준다.


강요배의 그림 옆쪽에 조선 선비의 방을 그대로 재현한 듯한 작은 사랑방이 있다. 예전 같았으면 여기서 손님을 맞았을 테니, 이 호텔이 품은 마음을 대변하는 공간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달항아리는 바로 그 옆, 로비 안쪽에 자리 잡고 있다. 유백색의 백자 살결이 은은한 빛을 스스로 뿜어내는 듯하다. 유물과 미술품을 전담하는 전문 학예사(큐레이터)까지 둔 호텔프리마는 백자와 함께 ‘천년의 접시전(展)’을 열고 있다. 10세기 후반의 초기 청자부터 절정기 고려 비색(翡色)의 신비한 아름다움, 상감청자의 표면을 금으로 장식한 ‘화금청자’가 보여주는 세련미의 극치까지 물 흐르듯 펼쳐진다. 고려의 붕괴로 국가의 관리를 받던 사기장들이 전국 각지로 흩어지니 고고한 청자와는 또 다른 자유분방하고 생동감 넘치는 분청사기가 발달했다. 조선 건국과 함께 유교 이념이 당대의 미감에도 영향을 끼치니, 점차 백자가 나라를 대표하는 도자기로 자리 잡는다. 백자 표면에 그려진 학·잉어 등의 문양은 선비의 기상과 출세의 욕망을 드러내는 반면 도마리·금사리·분원리 등 생산지에 따른 미묘한 특성과 차이는 접시를 뒤집어 굽을 봐야만 확인할 수 있다. 경험과 안목이 필요하다. ‘천년 도자사(史)’의 자부심은 본관 3층 로비와 호텔 곳곳에 전시된 수십 점의 유럽 명품 도자기 마이센(Meissen)으로 이어진다. 1592년 임진왜란을 계기로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도공의 섬세한 기술이 화려한 ‘아리타 도자기’를 이뤘고 에도막부 시대에 그 기술이 유럽까지 뻗어 나갔다. 일본 목판화 우키요에가 인상파 미술에 영향을 준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 도자 기술은 1709년 독일의 연금술사가 유럽 최초의 경질자기를 만들어내는 데 영향을 미쳤다. 이를 기반으로 탄생한 것이 유럽 자기를 대표하며 세계 5대 도자기로 손꼽히는 마이센이다. 외국 명품 부럽지 않은 우리 유물의 자부심, 나아가 우리의 한류가 끼친 영향이 새로운 방식으로 꽃을 피웠음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 바로 수십 년에 걸쳐 국내외 도자기를 수집한 이 대표의 철학이다.

호텔프리마 로비 내 박물관에서는 국보급 ‘달항아리’와 고려시대 청자부터 분청사기, 조선 백자까지 아우르는 ‘천년의 도자’ 전시를 만날 수 있다.




호텔프리마 로비 내 박물관에서는 고려시대 청자부터 분청사기, 조선 백자까지 아우르는 ‘천년의 도자’ 전시를 만날 수 있다.


호텔프리마 로비 내 박물관에서는 고려시대 청자부터 분청사기, 조선 백자까지 아우르는 ‘천년의 도자’ 전시를 만날 수 있다.


로비의 또 다른 벽 하나를 독차지한 ‘금강산’도 명품이다. 윤곽선 없이 먹물의 농담(濃淡)만으로 그리는 몰골법으로 금강산 일만이천봉의 다채로운 산세를 정교하게 묘사하고 있다. 폭 4m의 대형 작품을 밑그림 없이 그려내려면 사전 구상과 숙련된 기술이 필요한데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이 같은 몰골법 대형 산수화의 명맥이 끊기다시피 했다. 이 그림은 조선화, 즉 북한 그림이다. 북한에서 ‘영웅화가’로 꼽히는 최창호의 작품인데 중국인 소장가의 대여로 2018년 광주비엔날레 특별전에 출품됐던 것을 호텔이 사들였다. 도공의 기술과 마찬가지로 탁월한 ‘우리 실력’이었으나 잊힌 그림 기법을 ‘잃지는 말자’는 생각에서 걸어놓은 그림이다.

북한 화가 최창호가 전통 몰골법으로 그린 ‘금강산’. 지난 2018년 광주비엔날레 특별전에 선보였던 작품이다.


사진으로 조각하는 작가 권오상의 콜라주 작품 ‘더 플랫(The Flat)’이 호텔프리마 로비 상부에 걸려 있다. 소비사회의 속성을 보여주는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다.


윤병락의 ‘사과’.


‘사진조각’이라는 자신만의 방식을 개척한 권오상의 콜라주 작품과 윤병락의 크고 탐스러운 사과 그림을 지나, 미술품의 향연은 호텔 내 레스토랑 ‘공’으로도 이어진다. 식당 입구와 테이블 주변 곳곳에 마이센 도자기가 전시돼 있을 뿐만 아니라 줄리안 오피, 에바 알머슨 등 인기 작가들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근대기 한국 서양화의 선구자로 꼽히는 박영선의 명화들만 모아둔 방은 아는 사람 눈에만 띄는 보석 같은 곳이다. 1950년대 후반 파리에서 유학한 화가의 이국적 풍경화와 서정적인 정물화, 특유의 이상적인 여성인물화를 다양하게 접할 수 있다. 특히 ‘파리의 서커스’는 입체주의·분할주의·초현실주의 등 유럽에서 다양한 미술을 접한 작가가 그 역량을 집대성한 걸작으로 볼 만하다.

작품의 다양함은 동서고금을 넘나든다. 운보 김기창의 대형 매 그림이 있는가 하면 프랑스 작가 루이스 미다바인이 병풍그림으로 그린 아르데코 양식의 금빛회화까지 볼 수 있다. 눈 닿는 곳곳이 작품인 호텔이니 객실도 마찬가지다. 방마다 그림은 필수요, 8층에는 해외에서 방문한 예술인들이 묵었다 떠나며 남긴 사인과 사진도 걸려 있다. 로비와 일반객실이 이 정도니 스위트룸은 어떨까. 미국을 대표하는 팝아트 작가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대형 판화가 입구에서 손님을 맞는다. 리히텐슈타인의 회화는 수백억 원 이상에 거래되며 판화도 수천만 원을 호가한다.

박영선의 ‘파리의 서커스’.


박영선의 ‘정물’.


강요배의 그림 옆에 전시 중인 유럽 명품 마이센 도자기.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도공의 기술이 유럽까지 전파돼 화려한 마이센의 탄생을 이끌었다.


그럼에도 서울의 부(富)를 상징하는 강남 한복판의 호텔프리마가 강조하는 것은 가격보다는 가치다. 유명세보다는 알아보는 안목을 강조하고, 과거의 전통에 기반해 현재의 예술이 빚어갈 미래에 주목한다. 호텔 인근 ‘프리마타운’에는 별도의 미술관도 있어 예약제로 관람할 수 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사진=권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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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레저부 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
친절한 금자씨는 예쁜 게 좋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현대미술은 날 세운 풍자와 노골적인 패러디가 난무합니다. 위작 논란도 있습니다. 블랙리스트도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착한미술을 찾기 위해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미술관, 박물관으로 쏘다니며 팔자 좋은 기자. 미술, 문화재 전담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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