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는 ‘확장재정’을 내세우면서 출범 후 첫 예산인 지난 2018년 예산 증가율을 7.1%로 잡았다. 박근혜 정부의 2017년도 예산증가율(3.7%)보다 두 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 정부는 이후에도 예산증가율을 9%대로 유지해오다 내년에는 8.5%로 잡았다. 국가채무비율을 오는 2024년까지 60% 미만으로 유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지만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여야가 재난지원금 선별지급을 위한 4차 추경에 합의하면서 당장 올해 지출 규모가 껑충 뛰는데다 내년에도 대규모 적자재정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중장기 국가채무비율 전망치도 낙관적인 경제성장 전망을 전제로 한 것이어서 2024년에는 국가채무비율 60% 돌파가 확정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합의한 4차 추경이 현실화하면 10조 원 안팎의 추가 지출이 불가피하다. 이 경우 국가채무비율은 정부 예상치(43.5%)보다 높은 44%로 오른다. 현재 지출구조조정을 통한 예산 확보가 불가능해 전액 적자국채로 충당해야 한다. 여기에 이날 정부가 발표한 2021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도에는 대규모 적자재정이 예정돼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위축된 경기상황에서 법인세 급감, 역대 최대 규모의 국세감면 등으로 세수 상황은 전례 없이 나쁜데 돈을 써야 할 곳은 많기 때문이다. 내년 예산은 총지출(555조8,000억원) 규모가 총수입(483조원)보다 무려 72조8,000억원이나 많은 역대 최대 수준의 확장재정이다. 정부는 올해 본예산 대비 9조2,000억원 덜 걷히는 282조8,000억원의 국세수입을 전망했다. 특히 법인세는 코로나19 여파로 급감하며 총 53조3,000억원으로, 세입경정을 한 올해 3차 추경보다도 5조2,000억원(8.8%)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로 인해 내년 실질적인 나라살림인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109조7,000억원에 달하고 국내총생산(GDP)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46.7%로 상승한다.
사상 최대 적자예산이 불안한 이유는 정부가 내년 이후 수입 전망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풍년이 들어 곳간이 채워질 것’이라며 일단 쓰고 보자는 셈이다. 정부는 국가재정운용계획 수립을 위한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올해 0.6%, 내년 4.8%, 2022~2024년 4.0%로 상정했다. 이를 토대로 기획재정부는 2020~2024년 국가재정운용계획상 적자 비율은 5%대, 국가채무비율은 2024년 기준 50% 후반 수준 이내로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한국은행의 물가안정목표(2%)가 유지된다고 전제해도 실질 성장률이 2%에 달할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낙관론을 전제로 나온 수치라는 비판이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1~2년 동안 실질 성장률 1% 달성도 힘들 것으로 전망되는데 과대한 추계”라며 “코로나19 사태가 좋아진다고 해도 평균 실질 성장률 2% 이상이 나오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등의 여파로 내년도에는 법인세·소득세·부가가치세 등의 주요 세수가 일제히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정부 낙관론의 발목을 잡는다. 공시지가 상향과 종합부동산세율 인상 등으로 부동산 관련 세수가 늘어난다 해도 법인세 등 감소를 메우기에는 역부족이다.
정부의 지출계획이 매년 바뀌는 것도 문제다. 정부는 2024년까지의 정부 재정지출 증가율을 연평균 5.7%로 예상했다. 하지만 그간 정부가 발표한 국가재정운용계획상의 지출 증가율과 실제 지출 증가율은 상당한 괴리가 있어왔다. 일례로 2019~2023 국가재정운용계획상 지출 증가율은 연평균 6.5%였으나 지난해 실제 지출 증가율은 9.5%에 달했다.
결국 올해 4차 추경, 코로나19 여파의 장기화, 정부의 낙관적인 전망 등을 감안하면 늦어도 2024년에는 재정건전성 마지노선인 국가채무비율 60%가 깨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국가채무 비율 60% 이내를 재정건전성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강삼모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위기로 실업률도 높아지고 성장률도 마이너스니 재정지출을 안 할 수는 없지만 문제는 재정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하느냐다”라며 “효율적 재정운용을 한다면 적자폭도 감당 가능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국가채무만 커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하정연기자 ellenah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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