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행위에 스스로 엄격해야 할 경찰이 동료 경찰관의 음주운전 교통사고에 대해 선처해 달라는 탄원서를 돌리며 ‘제 식구 감싸기’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인천에서 만취 운전자의 차량에 숨진 치킨 배달원 사고에 대해 김창룡 경찰청장까지 나서 엄정 수사할 것을 지시한 것을 고려하면 제 식구에겐 고무줄 잣대를 바라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전남 화순경찰서 등에 따르면 지난달 18일 오후 9시 30분께 화순군 능주면 한 도로에서 화순경찰서 모 파출소 소속 A 경위가 술을 마시고 오토바이를 운전하다 자전거를 타고 가던 60대 남성 B씨를 쳤다. 당시 A 경위는 운전면허 취소 수치(0.08%)보다 혈중 알코올농도가 두배 가까이 되는 만취 상태에서 운전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사고로 두 사람 모두 부상을 입었지만 A 경위는 경찰이나 119구조대가 도착하기 전 길을 지나던 지인의 차를 타고 사고 현장을 빠져나갔다. 이를 두고 A 경위가 도주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지만, 경찰은 “두 사람이 서로 아는 사이였고, A 경위가 더 많이 다쳐 먼저 차를 타고 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발목에 부상을 입고 길에 서 있던 B씨는 뒤이어 도착한 119구조대 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화순경찰서 소속 일부 경찰관들은 A 경위의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에 서명해 줄 것을 주변 동료에게 권유하고 있다. 해당 탄원서는 경찰 공무원의 권익과 복지 향상을 위해 만들어진 ‘직장협의회’ 차원에서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A 경위는 화순경찰서 직장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다.
이를 두고 경찰 내부에서부터 부적절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경찰 관계자는 “경찰이 동료라는 이유로 조직적으로 선처를 요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며 “그렇다고 관계가 얽혀있는 지역 경찰의 특성상 탄원서에 서명을 안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라고 밝혔다.
이 사건은 소속 경찰관을 직접 수사하지 못하는 수사 규칙에 따라 화순경찰서에서 나주경찰서로 이첩됐다. 나주경찰서는 A 경위에게 도주 혐의를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해 음주 운전과 음주 사고 혐의에 대한 기소 의견으로 지난 11일 검찰에 송치했다.
/박동휘기자 slypdh@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