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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스포츠문화
그리스 기둥이 아니라 우리 장승이로다

김종영미술관, 최충웅 1주기 유작전

1974년 스티로폼 조각의 선구자

청동과 결합해 시간의 두께 만들어

최충웅 유작전 ‘우리 눈으로 조각하다’ 전시 전경. /사진제공=김종영미술관




쉽게 바스라지고 가벼이 날리는 스티로폼을 조각의 재료로 택한 이 누구인가. 최충웅(1939~2019)이다. 전통적으로 조각의 재료는 흙과 돌, 나무와 청동이었다. 그중에서도 흙보다는 돌, 나무보다는 청동이 보존성을 이유로 선호됐고, 실제로 더 오래 남았다. 1963년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다양하게 활동하던 최충웅은 1974년에 처음 스티로폼으로 작업하기 시작했다. 당시 조각계에서 스티로폼은 생소한 재료였고, 생전의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편견이 있어서 어떻게 스티로폼을 재료로 선택했느냐며 웃고 그랬어.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거든. 매년 작업을 해내니까 다들 깜짝 놀랐지.”

스티로폼은 70℃에서도 쉽게 녹아내리고 탈 때 자극적인 냄새와 유독가스가 발생하는 인화성 물질이다. 작가는 이 스티로폼이 기름에 용해되는 성질을 발견한 후 작품에 도입했다. 작품의 크기를 어림잡아 전기톱으로 스티로폼 단면을 자른 후 휘발성 기름으로 표면을 조금씩 녹여가며 형태를 만들었다. 젊은 시절 작가의 곁에서 이를 지켜봤던 최태만 국민대 교수는 “흙을 붙여 형태를 만드는 소조와 달리 스티로폼은 체적을 조금씩 줄여 형태와 질감을 구현하는 것이 특징이며, 손에 의해 표면 질감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기름의 농도와 흘러내리는 양, 방향에 따라 형태와 질감이 결정되기에 ‘자동기술적’ 효과가 결합된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면서 “부식된 표면은 화산에서 분출한 용암이 급속 냉각된 현무암 또는 오랜 풍화를 거쳐 자연스럽게 형성된 바위의 질감을 연상시킨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작가는 등산하다 발견한 바위에서 영감을 얻어 줄기에서 뻗어 나간 가지 같은 형태의 작품을 스티로폼으로 구현하기도 했다.

최충웅 ‘작품97’, 1997년, 청동, 12x45x93cm


최충웅은 1974년 ‘현대공간회’ 전시와 1975년의 제 24회 국전(國展)에 최초의 스티로폼 조각인 ‘전설’을 출품해 세상에 공표했다. 그의 1주기를 맞아 기획된 대규모 유작전이 서울 종로구 평창동 김종영미술관 신관 전체에서 한창이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초기작의 녹고 패인 흔적 역력한, 울퉁불퉁한 작품은 전설 같은 시절의 고단했던 삶을 고스란히 공감하게 한다. 그가 내용의 소재로 삼은 것은 우리네 전설이요, 특히 장승이었다. 구전돼 민간에 전해오는 옛이야기, 마을 앞 수호신이자 이정표 같은 장승을 통해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 기둥 형태로 줄지어 선 토템 같은 작품을 보고 그리스나 고대 잉카문명의 기둥을 떠올릴지 모르나, 실제로는 소박하지만 듬직했던 우리의 장승과 탑 등이 작품을 낳게 했다.



그런데 스티로폼 작품이 어떻게 지금까지 남았을까? 작가는 스티로폼에 청동을 접목하기에 이른다. 스티로폼 원형으로 거푸집을 만들고 그 안에 끓는 청동을 부으면 스티로폼이 녹아 없어지면서 거친 표면을 그대로 남긴 채 청동과 뒤엉킨다. 푸릇푸릇한 청동색이 수백, 수천 년 전 유물의 기운을 내뿜는다.

김종영미술관 기획전 ‘최충웅, 우리 눈으로 조각하다’ 전시 전경.


최충웅을 586,X세대,밀레니얼 식으로 세대 구분에 넣자면 ‘4·19세대’라 부를 수 있다. 대학 재학 중 4·19혁명에 앞장선 첫 번째 민주화 세대라는 의미다. 20대의 다짐은 1980년대의 울분으로 터져 나온다. 1980년대 중반에 제작한 청동인물상 ‘오월의 여자’가 이를 대변한다. 두 손 묶인 젊은 여성이 하늘 향해 목을 길게 빼 고개 젖힌 형상이다. 작가가 “5·18 광주항쟁을 주제로 한 건데 그 내용을 굳이 강조하지는 않았다”고 한 작품이다.

전시를 준비한 박춘호 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은 “대학에서 은사 김종영 선생과 만남이 최충웅의 예술관에 밑거름이 됐고 1968년에 ‘현대공간회’ 창립회원으로 참가한 이래 20여 년간의 활동은 작가로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면서 “최충웅은 일생을 ‘현대미술이 어떻게 우리 전통을 바탕으로 발전할 수 있는가’를 화두로 묵묵히 옛것을 통해 새것을 이루고자 매진한 ‘주체적인 글로컬리스트(Glocalist)’였다”고 평가했다. 전시는 29일까지.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최충웅 ‘오월의 여자’ 1980년대 중반 제작한 이 작품을 두고 작가는 “5.18 광주항쟁을 주제로 했다”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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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레저부 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
친절한 금자씨는 예쁜 게 좋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현대미술은 날 세운 풍자와 노골적인 패러디가 난무합니다. 위작 논란도 있습니다. 블랙리스트도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착한미술을 찾기 위해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미술관, 박물관으로 쏘다니며 팔자 좋은 기자. 미술, 문화재 전담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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