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토착왜구·죽창은 이제 그만…우리가 먼저 일본에 손 내밀어야"

[청론직설] 신각수 전 주일대사

스가 총리, 이념적 색채 엷어…재신임 후 독자행보 전망

관계개선 골든타임은 한국 선거국면 전인 연말~내년 봄

日기업 자산매각은 맞보복 악순환, 한일관계 파국 맞아

‘반일’ 정치적 유불리 배제하고 외교 환경 개선 결단을

신각수 전 주일대사가 12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이념적 색채가 엷은 스가 요시히데 총리 취임은 최악의 한일관계를 개선할 기회의 창이 조금이라도 열린 것”이라며 “우리가 이니셔티브를 쥐고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형주기자




지난 2012년 8월10일, 광복절을 닷새 앞두고 이명박 대통령은 독도를 전격 방문했다. 일본이 8월 말 한일 재무장관 회담을 취소하고 주한 일본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하는 등 한일관계는 급속히 냉각됐다.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 대한 국민적 지지율은 높았지만 이 과정에서 외교가의 목소리는 철저히 배제됐다. 당시 대일 외교의 최전선에 있었던 신각수 주일대사는 한 달 동안 일본 외무성에 네 차례나 초치되는 파란을 겪었다. 8년이 지난 지금 한일관계는 최악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MB의 독도 방문은 일회성 이벤트에 그쳤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한일관계는 과거사 갈등이 무역과 안보 분야로 확전하면서 국교 수립 이후 최악이다. 그나마 극우 강경파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물러나고 스가 요시히데 신임 총리가 취임함에 따라 일말의 기대감을 갖게 하지만 스가 총리 스스로 ‘아베 계승’을 기치로 내건 만큼 성급한 낙관론은 금물이다. 스가 시대 개막(9월16일) 한 달에 맞춰 신 전 대사를 만났다.

2012년 광복절을 닷새 앞둔 8월10일 독도를 전격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경비대원을 격려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일대사(2011년 6월~2013년 5월)를 지낼 때 스가 총리를 만난 적이 있는가.

△대사 임기 말년에 스가 관방장관을 두어 번 만났다. 잠깐 동안의 만남이어서 인물평을 하기는 곤란하지만 다부지다는 인상을 받았다.

-스가 총리는 어떤 인물인가. 흙수저 출신이라고 하는데.

△언론에서는 흙수저 총리라고 보도하지만 딱히 그렇지는 않다. 집안은 아키다현에서 딸기 농사로 부유했던 것으로 안다. 다만 가업을 잇지 않고 고학으로 대학을 나와 의원 비서, 시의원 등을 거쳐 중앙 정치무대에 섰다. 한마디로 밑바닥에서 최정상까지 올라온 인물로 서민 밀착형 정치인이다. 신문 지상의 독자 인생 상담 코너를 즐겨 읽는다고 한다. 이는 서민 애환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어서 자신의 이미지 메이킹에 큰 도움이 됐다. 관방장관 때 새 연호인 ‘레이와 (令和 )’ 가 쓰인 액자를 들어 올리며 새 연호를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20~30대 젊은층 사이에서는 ‘레이와 오지상 (레이와 아저씨)’이라고 불릴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정치적으로는 크나큰 행운이다.

-세습형 정치가가 아니어서 그런지 실용적인 인물이라는 평가가 많다.

△이념적 색채가 엷다. 역사 수정주의에 가담했지만 아베 전 총리처럼 적극적으로 선봉에 나선 인물은 아니다. 2015년 위안부 합의를 앞두고 합의 자체를 반대하던 아베 총리를 설득한 인물이 스가 당시 관방장관이다. 아베와 비교하면 이념과 가치보다는 효율과 실용을 우선한다. 아베 정부를 계승하지만 아베와는 다른 길을 갈 것 같다.

아베 신조(왼쪽) 일본 총리가 지난 9월14일 신임 자민당 총재로 선출된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에게 당선 축하 꽃다발을 전달하고 있다. /도쿄=AP연합뉴스


-아베의 재등판 가능성은 없는가.

△힘들다고 본다. 우선 그는 7년 8개월의 최장수 총리라는 기록을 남겼다. 스가 신임 총리가 아베 정책을 계승하겠다고 했지만 점차 자기 색채를 낼 것이다. 내각에 아베 인사를 대거 포진시킨 것을 두고 ‘아베 판박이’라고 하지만 스가 정부를 ‘아베 2.0’이 아닌 ‘아베 1.5’라고 본다. 스가는 1년 전부터 차기 총리를 준비해왔다. 원래 시나리오라면 관방장관을 그만둬야 하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물러나지도 못했다. 그런 차에 아베의 돌연 사임으로 아베 잔여 임기 1년을 물려받았다.

-스가 총리가 연내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을 치르는 승부수를 던질까.

△올해는 어렵다고 본다. 코로나19 방역과 올림픽 준비, 일본 경제 살리기 등이 당면한 최우선 과제다. 스가 총리가 자신의 정치를 하려면 총선에서 신임 여부를 물어야 한다. 그게 일반적인 일본 정치의 패턴이다. 스가 총리는 언제가 좋을지 가늠할 것인데 내년 초 예산안의 의회 통과 때까지는 기다릴 공산이 크다. 늦은 봄이나 초여름쯤 중의원을 해산하고 자신의 신임을 물을 것으로 전망한다.

-스가 시대 출범이 한일관계를 풀어가는 모멘텀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선거를 통해 재신임을 받기 전까지 일본이 한일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국과 뭔가 도모하다가 어그러지면 정치적으로 큰 부담이 된다. 그런 부담이 없다고 자신할 때까지 한일관계 개선에 나서기 어렵다.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해서는 기본적으로 아베와 다를 바 없다. 그는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내치부터 주력할 것이다.

2020년 5월20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제1440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 시위’가 열리고 있다./서울경제DB


‘제1440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 시위’가 열린 2020년 5월20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윤미향 국회의원 당선인(전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을 규탄하는 맞불집회를 하고 있다./서울경제DB


-결국 관건은 강제징용 문제의 해결이다. 우리 법원은 일본 기업 자산압류에 이어 현금화 조치를 앞두고 있다.

△압류자산을 매각해 현금화하는 것은 사법적 절차이니 피할 도리는 없다. 물론 매각은 매수할 상대방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일본은 현금화를 매우 심각한 사안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일이 현실화하면 일본은 반드시 ‘현실적’인 보복 조치를 취할 것이다. 다시 말해 실제적 타격을 줄 조치를 취한다는 의미다. 이렇게 되면 우리 역시 맞대응을 할 것이고 양국 관계는 사실상 파탄 국면을 맞을 공산이 크다. 이것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현금화 이전에 반드시 해결의 물꼬를 터야 한다.



-한국과 일본 어느 쪽에서 먼저 나서야 하는가.

△우리 입장은 삼권분립을 내세워 대법원 판결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일본은 민간 피해 배상 청구가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의 위반이라고 간주한다. 이런 식으로 평행선을 달리면 한일관계 개선은 요원하다. 결국 대법원 판결과 한일협정 사이의 모순과 괴리를 메우는 길밖에 없다. 우리가 이니셔티브를 쥐고 먼저 나서야 한다. 1965년 양국 국교 수립 이후 청구권과 관련한 문제는 협정의 틀 내에서 유지돼왔다. 이런 상황을 바꾼 것은 우리 대법원의 판결이다. 정부가 상황을 바꾸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손을 놓는다는 것은 곤란하다. 우리 정부가 협정과 판결의 괴리를 풀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 맞지 않은가.

-구체적 해법을 제시한다면.

△대법원 판결을 되돌릴 수는 없다. 판결을 뛰어넘으려면 새로운 법률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일본으로부터 받은 자금을 지원받은 한국 기업과 우리 정부, 피해자를 고용했던 일본 기업 등 3자가 협력해 강제 동원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기금을 만드는 게 합리적이라고 본다. 그와 별도로 피해자와 피해자 지원 단체 설득 등 국내적 절차도 중요한 과제다. 관건은 일본 기업의 부담이다. 그러자면 일본 정부의 용인 또는 묵인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외교의 역할이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한국 배제 소식이 알려진 2019년 8월 울산시 동구의 한 도로변에 “NO 아베! 토착왜구 OUT”이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일본이 과거사에 대한 진지한 반성도 하지 않았는데 우리 정부와 기업이 부담하는 해법을 국민들이 납득하겠는가. 가뜩이나 ‘토착왜구’라는 반일(反日) 프레임이 있는 상황인데.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지 75년, 일본과 국교를 수립한 지 55년이 지났는데 어느 국민이 일본을 위해 일하겠는가. 토착왜구라고 비난하거나 죽창을 들자는 말이 도대체 21세기에 있을 수 있는 말인가. 정치적 이득을 노리고 상대편 진영을 몰아세우기 위한 구호에 불과하다. 이웃 나라와의 외교에서 실패하면 다른 외교는 설 땅이 없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외교가 국가이익이라는 큰 틀이 아니라 국내 정치로 채색돼서 움직이면 제대로 굴러갈 수 없다. 외교는 상대방이 있기에 100점 만점이 없다. 100점이라면 양국 관계는 지속할 수 없다. 60점 정도가 최선이다.

-우리 정부가 한일관계 개선 의지를 갖고 있다고 보는가.

△스가 총리 취임을 계기로 양국 간 서한이 오가고 두 정상이 통화도 했다. 한일관계를 이대로 방치하지 않겠다는 의지는 있다고 본다. 관건은 실제적 조치와 행동이다. 매우 어려운 과제이지만 구체적 결과가 나오지는 않더라도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우호적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양국관계를 선순환 궤도에 올려야 한다.

-우리는 내년부터 사실상 선거 국면으로 접어든다. 일본 기업 자산 매각도 피하기 어렵다. 한일관계 개선의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는 것 같은데.

△선거 국면에 돌입하면 한일관계는 뒷전으로 밀릴 공산이 크다. 한중일 정상회담이 열리기로 돼 있는 11월부터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실시되는 내년 4월 사이가 한일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할 적기다. 그때쯤이면 스가 총리도 중의원 해산 여부에 대한 판단이 설 것이다. 스가 총리의 등장으로 ‘기회의 창’이 다소나마 열렸다. 기회의 창을 활용하는 것은 결국 정치적 결단의 영역이다. 모두가 만족할 수는 없지만 최대공약수를 만들고 그런 난관을 돌파하는 것이 외교다. 한일관계를 정상화시켜 이를 외교 자산으로 삼아 우리 외교 환경을 개선하겠다는 정치 지도자의 의지와 결단이 중요하다. 정치적 유불리를 따진다면 해법 모색은 기대하기 어렵다.

2019년 12월24일 중국 쓰촨성 청두에서 열린 제8차 한중일 정상회담 후 3개국 정상들이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청두=신화연합뉴스


-한중일 정상회담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미국 대선과 쿼드(Quad·반중국 미·일·호주·인도 비공식 안보협의체) 등의 문제로 개최 여부를 장담하기 어려운데.

△다소 유동적이지만 현재로서는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한중일 정상회담이 열리면 한일 정상회담도 열릴 공산이 크다. 과거에 중일관계 악화 때문에 한중일 정상회담이 열리지 않은 적이 있다. 쿼드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과거와 같은 상황은 아니다. 스가 총리는 총재 경선에서 쿼드의 아시아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확대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일 동맹을 우선하지만 경제적 이익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중국과 척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일본은 한일 정상회담을 가진 뒤 일본 기업 자산 현금화가 이뤄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 점을 유념해야 한다.

/권구찬선임기자 chans@sedaily.com

신각수 전 주일대사 /성형주기자




1955년 충북 영동에서 태어나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국제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외무고시 9기로 외무부에 들어가 조약국장, 유엔 차석대사, 주이스라엘 대사 등을 역임했다. 이명박 정부 때 외교통상부 2차관과 1차관을 거쳐 2011년부터 주일대사로 2년 동안 대일 외교를 이끌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