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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의 언어정담] 간절히, 친구가 필요한 순간

작가

힘든 시기 견딘 친구 20년만에 만나

내편 없는 현실에 고통스러웠을 텐데

먼저 다가가 위로·응원 못해줘 후회

글쓰기 통해 아픈 상처서 벗어나길

정여울 작가




글쓰기 수업을 하다 보면 가끔 오랫동안 끊어졌던 인연을 다시 만나게 될 때가 있다. 얼마 전에는 온라인 비대면 수업으로 글쓰기 강좌를 개설했는데, 20년 넘게 만나지 못했던 학창시절 친구K가 내 수업을 듣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창시절 매일 내 옆에 앉는 ‘짝꿍’이기도 했지만, 나의 수줍음 때문에 학창시절이 끝난 뒤에는 먼저 연락하지 못했다. 그 친구가 이혼을 하고 미국에 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머나먼 풍문을 통해 들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그 친구의 사랑스러운 아이들, 그리고 재혼한 남편의 얼굴을 보며 ‘행복하게 살고 있구나,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을 데리고 힘든 외국생활에 적응하고, 상대방은 초혼이고 연하인데도 아이들이 많은 K를 아무런 거리낌없이 사랑해주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언젠가 K가 한국에 오게 되면 말해주고 싶었다. 내 친구, 정말 멋지다고. 본인의 유학 공부도 하고, 아이들도 키우며, 대가족의 살림을 도맡아 하려면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필요할까. K의 초인적인 능력에 감탄할 뿐이었다.





그런데 K가 ‘온라인 수업’을 통해 나의 글쓰기 특강까지 듣는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녀의 부지런함에 또 한 번 놀랐다. 글쓰기 과제가 워낙 많아서, 웬만한 뚝심 없이는 8회 특강을 마치기 힘든, 하드트레이닝 글쓰기 수업이다. 학창시절 짝꿍이 가르치는 글쓰기 수업을 선택하다니, K의 용기는 역시 사람을 감동시키는 데가 있었다. 그런데 K는 나에게 ‘사랑하는 글쓰기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쓰며 편지를 통해 어느새 성큼 나에게 다가와 있었다. 20여 년의 소원함이 단번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코로나19사태로 인한 온라인 수업이 이런 뜻밖의 상봉도 가능하게 하다니. 나는 신기해 하며 K의 글을 읽어보았다. 그녀의 글을 통해 그동안 전혀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머나먼 이국땅에서 재혼을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리고 누구도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고 뒤에서 수군대는 사람들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단 한 사람도 K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는 현실이 미치도록 고통스러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글을 읽고 뼈아픈 후회의 감정을 느꼈다. 그렇게 힘든 줄 알았다면, 내가 먼저 다가가 이야기해주었을 텐데. 넌 누구도 쉽게 해내지 못한 힘든 일을 해내고 있는 거라고. 넌 누구보다도 커다란 응원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나는 뒤늦게 친구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내가 먼저 다가가지 못해서 미안해. 우리가 이렇게 편하게 편지를 나눌 수 있게 되어서 정말 기뻐. 너의 글을 읽으면서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들은 반드시 가장 아픈 상처와 연관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어. 나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들은 거의 어김없이 나에게 가장 아픈 상처를 주지.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존재들이 주는 상처조차 이제는 완전히 내 것으로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을 해. 또 한 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해. 나를 지키기 위해,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 나를 괴롭히는 모든 장애물과 용감하게 싸워야겠다는 생각. 점점 더 그 생각이 커지고 있어. 그래서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과는 인연을 끊었어. 완전히. 그러다 보니 인간관계가 확 좁아졌지만, 너무 편안해졌어. 나를 괴롭히는 존재들과 아예 절연함으로써 나는 점점 자유로워지는 느낌이야. 참으로 다행스러운 건 내가 글쓰기를 통해서 그 상처를 스스로 조금씩 극복해왔다는 거였어. 공식적인 글쓰기에 다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나혼자만의 일기 속에서라도 속상하고 슬펐던 것, 결코 용서할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해 글을 써봄으로써 점점 더 상처로부터 해방되는 느낌이 들어. 너의 아픈 경험은 너의 글쓰기가 지닌 최고의 보물창고가 되고 있단다. 네가 수줍음을 딛고 조금씩 너의 이야기를 풀어낼 때마다, 너의 재능도 함께 표현되고 있어. 그러니까 걱정 말고 활짝, 마음을 열어 글을 써봐. 나는 네 글을 볼 때 떨리고, 설레고, 뿌듯해. 글쓰기를 통해 멀어졌던 친구를 되찾을 수 있으니까. 고마워! 나에게 다시 다가와줘서! 나의 눈부신 친구, 멋지다. 그 힘든 나날들을 꿋꿋하게 버텨주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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