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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도시] 쌓아 올린 단독주택…家치를 쌓아 올리다

■용산국제학교 외국인 교사 사택

제 역할 찾은 발코니…더 프라이버시하게…층별 가든…

정면에서 바라본 용산국제학교 교사 사택의 모습. 대로를 바라보고 있지만 각 주택은 테라스를 끼고 사선 모양으로 기울어져 있어 소음과 시선 간섭을 최소화하도록 했다. /사진제공=신경섭 사진작가




건물 내부에는 중정처럼 1층 마당이 자리잡고 있다. 각 층에는 층별 가든도 마련돼 있어 이웃한 거주자들이 서로 오가며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장소가 된다. /사진제공=신경섭 사진작가


외국인들이 한국, 특히 서울에 와서 가장 놀라는 것 중 하나는 도심에 빼곡히 들어찬 아파트다. 개성 없는 높다란 건물에 사생활 보호 없이 모여 살아야 하는데, 이런 주택이 가장 비싼 주거공간이라는 사실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그들에게 아파트는 정원은커녕 그럴싸한 테라스도 없고 이웃 간 오가며 소통할 장소도 부족한 장소일 뿐이다. 부족한 정체성과 사회적 관계의 부재. 외국인이 처음 마주한 서울의 인상은, 그래서 공동주택이 풀어야 할 과제를 담고 있기도 한 셈이다.

서울 종로구 구기동 북한산 자락에 있는 용산국제학교 교사 사택은 이런 고민에서 설계됐다. 이 건물의 용도는 외국인 교사들을 위한 사택이다. 이런 경우 자칫 평범한 ‘기숙사스러운’ 획일화된 공동주택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설계자는 이웃 간의 관계,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내외부의 공간 개념 등을 고민하면서 공동주택의 새로운 해답을 찾아가는 방향을 택했다. 설계를 맡은 김태집 간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는 “한국에서의 공동주택에는 암묵적 법칙이 있고, 이를 요구한다는 생각을 한다”며 “사용자가 외국인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방식을 따르기보다 순수하게 ‘주거’ 자체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ㄱ’ 발코니 품은 붉은색 벽돌집

주변 시선·소음 차단 ‘나만의 휴식’ 설계



올 4월 준공된 용산국제학교 교사 사택은 대지면적 1,106㎡에 지하 1층·지상 6층의 공동주택이다. 싱글 유닛 14가구, 더블 유닛 10가구 등 총 25가구 규모다. 전체 가구 규모는 작지만 위치별로 총 8개의 세분화된 타입으로 구분될 만큼 저마다 색깔이 다르다.

우선 외관이 주택처럼 보이지 않는다. 정면에서 보면 직사각형 건물이고 각 가구들은 한쪽 공간이 테라스를 끼고 안으로 쏙 들어간 독특한 형태다. 멀리서도 느껴지는 외벽의 붉은색 벽돌 질감은 내부에서도 오롯이 이어진다. 모든 집에 통창이 적용돼 햇볕이 내부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도록 했다.

이 건물의 외관과 기능상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발코니의 역할이 도드라지게 강조돼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아파트에서 발코니란 확장을 전제로 한 공간이거나 창고 역할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파트에 사는 국민 대부분은 발코니가 없거나 창고에 둘러싸여 살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실외에서 휴식과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발코니 본연의 기능을 되살리는 설계로 이어졌다. 구기터널 입구와 맞닿아 소음과 주변 시선 간섭 문제를 안고 있는 지리적 문제를 고려해 발코니를 전면에 노출시키지 않고 집과 집 사이에 ‘ㄱ’자 모양의 내밀한 모양으로 만들었다. 일정한 폭을 확보해 경치를 감상하거나 의자를 놓고 휴식을 취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가능하게 했다. 바깥과의 경계는 투명한 창으로 구분해 더욱 넓은 공간감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건물 정면의 도로 쪽으로 창을 내지 않고 발코니 쪽에 창을 두면서 소음 문제 또한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다.

건물은 붉은색 벽돌로 마감해 안정감을 준다. 안쪽도 질감을 그대로 이어 연속성을 줬다. /사진제공=신경섭 사진작가


전체 25가구는 8개의 타입으로 세분화 돼 획일화된 공동주택의 모습을 탈피하려 했다. 더블유닛C타입의 집안 내부는 거실과 주방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형태다. /사진제공=신경섭 사진작가


☞개인과 공동체의 접점

단독주택 같은 특성…이웃 교류공간도





김 대표와 설계팀은 이곳을 ‘쌓아올린 단독주택’이라고 표현했다. 공동주택이지만 개인 거주의 특성을 살리는 형태의 주거공간을 구상했다. 건축주 또한 사생활을 중시하는 외국인 교사들이 사는 공간이니만큼 설계팀에 ‘사생활 보호’를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제시했다. 설계팀은 이를 위해 집과 집 사이에 발코니로 이격을 둬 단독주택 같은 개별성을 부여했다.

후면 복도에는 빈 ‘보이드(VOID)’ 공간을 둬 소음을 차단하는 효과를 내도록 했다. 이 공동주택은 한국 아파트에서는 사라져 가는 ‘복도식’ 구성으로 돼 있는데, 사생활 보호에 취약하다는 복도식 주택의 보편적 인식을 해소하기 위해 가구별로 분절된 방식을 취했다. 복도를 거닐고 있으면 시선은 개별 가구로 향하기보다 자연스럽게 외부를 향하도록 유도된다. 복도와 집 사이에는 약간의 빈 공간이 마련돼 집을 보기 어렵게 했다.

개인의 공간을 충분히 확보했지만 이웃들은 서로 분절돼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했다. ‘개인 공간’인 각 가구로는 시선이 흐르지 않도록 하면서도 복도에서 거주자들이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내향적으로 흐르는 1층 마당과 층별 가든은 거주자들이 서로 자연스럽게 마주치면서 소통하는 골목길 같은 장소다. 보기에 따라 조금은 길고 느린 진입 동선이지만, 이 또한 여럿이 사는 주택 안에서 교류와 소통을 담은 풍부한 여정을 유도하기 위해 계획된 설계다.





☞공동주택 보편적 답 제시

철저한 검증 거쳐 파격보다 안정 초점

용산국제학교 교사 사택은 각종 실험적 아이디어가 제시됐지만 철저한 검증을 거쳐 ‘보편성’과 ‘효용성’을 최우선으로 갖춘 건물로 완성됐다. 이곳은 일회성이 아닌, 지속성을 갖는 도시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실험보다 검증과 안정에 좀 더 초점을 맞춘 이유다. 새로운 주거에 대한 밀도 높은 고민의 결과로 이 건물은 2020 한국건축문화대상에서 대상(일반주거 부문)을 수상했다. 한 심사위원은 “공동주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보편적인 답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외국인 교사를 위한 주택’이라는 특수성뿐 아니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기존 주거방식의 한계가 명백하게 드러나는 상황에서 새로운 공간에 대한 한 가지 방식을 제공했다는 의미다.

실제로 이곳은 원래 입주 대상인 외국인 교사 외에도 지역 주민들로부터 ‘입주하고 싶다’는 문의가 계속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원래 살던 집을 처분하고 입주하고 싶다는 주민도 있다. 김 대표는 “이런 말은 어떠한 상보다도 건축가에게 영광스러운 칭찬”이라며 “이 공동주택이 건축계의 거대한 담론을 이끄는 것보다 입주하고 서로 이웃한 거주자들에게 소소한 행복을 주는 ‘따뜻한 건축’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진동영기자 j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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