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화웨이 제재 이후에도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물량이 늘어나고 있다. 미중 갈등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적잖지만 당장 돈이 되는 중국 시장을 포기할 수 없다 게 재계의 속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중국을 대체할 만한 국가를 찾기도 쉽지 않다. 중국 내수가 회복세를 보이는데다 중저가 스마트폰 업체들이 화웨이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는 만큼 국내 기업의 중국 시장 의존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지난달 29일 콘퍼런스콜에서 “화웨이 제재가 본격화된 후에도 코로나19 회복에 모바일 수요가 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며 “3·4분기부터 중저가 모바일 위주로 수요가 회복되고 4·4분기에는 모바일 D램, 낸드 모두 견조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조 바이든식 중국 견제는 도널드 트럼프 정부와 같은 1대1 방식이 아닌 동맹국과 협력한 ‘반중연대’ 형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높은 중국 의존도에 발목이 잡혀 한국이 모호한 입장을 취하면 양쪽 모두에 신뢰를 잃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올해 9월 누계 기준 전체 반도체 수출 중 중국으로 향하는 물량이 차지하는 비중은 41.57%로 조사됐다. 주력 수출품목인 메모리반도체로 한정하면 대중 수출 의존도는 더 커진다. 같은 기간 메모리반도체의 대중 수출 비중은 49.26%에 달한다. 홍콩 수출물량 중에서도 일부는 다시 중국 내륙으로 간다는 점을 고려하면 수출물량의 절반 이상이 중국으로 향하는 셈이다.
중국 의존도가 높은 것은 반도체 분야만이 아니다. 같은 기간 석유화학제품의 중국 의존도는 43.3%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밀기계류 제품의 경우 63.64%에 달한다. 미중갈등의 여파로 유탄을 맞을 수 있는 만큼 시장 다변화에 대한 필요성이 커졌으나 중국 위주의 무역 일변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고질적인 중국 의존도가 개선되지 않는 것은 당장에 수익을 내는 시장에서 발을 빼지 못하는 기업의 관성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주요국이 코로나19로 정상적인 산업생산 및 해외투자가 이뤄지지 않는 가운데 중국만 3월 이후 코로나19가 진정세에 접어들면서 상대적으로 정상적인 대내외 경제활동이 가능한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재계는 중국 시장에서 수익을 내 다른 국가에 투자를 확대하는 식으로 다변화 전략을 추진해왔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중국 이외에 이렇다 할 시장을 찾기 어렵게 됐다는 것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중국 시장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서도 “당장 수익이 나는 중국 시장을 포기하고 수익이 불투명한 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향후 중국 때리기를 본격화하면 높은 중국 의존도가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과의 무역전쟁에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을 끌어들여 공동전선을 구축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이 중국 시장에 발목이 잡혀 어정쩡한 태도를 취할 경우 미중 양쪽에서 공세를 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세종=김우보기자 ub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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