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과 정부가 현재 연 24%인 법정 최고금리를 내년 하반기부터 연 20%로 내리기로 했다. 고금리 대출을 이용하는 서민의 이자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취지인데, 급격한 금리 통제로 오히려 자금 수요가 절실한 저신용자가 합법적으로 돈을 빌릴 수 있는 길이 아예 막힐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본지 10월14일자 10면 참조
더불어민주당과 금융위원회·법무부는 16일 당정협의를 열고 법정 최고금리를 현행 연 24%에서 연 20%로 인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인하시기는 내년 하반기다. 정부는 이를 위해 이자제한법과 대부업법 시행령을 개정할 예정이다. 국회를 통과해야 하는 법 개정과 달리 시행령 개정은 국무회의와 대통령 재가만 거치면 돼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당정은 저금리 기조의 장기화 추세, 고금리로 인한 서민의 부담 경감 필요성 등을 고려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최고금리 20%’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하다. 당초 저신용자들이 제도권 금융의 마지막 보루인 대부업에서마저 밀려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업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신중론이 우세했지만 정부는 2018년 당시 연 27.9%였던 최고금리를 연 24%로 내린 뒤 3년이 채 안 돼 이번에 다시 추가 인하를 관철시켰다.
정부는 이번 최고금리 인하로 약 208만명이 혜택을 볼 것으로 추정했다. 정부 추산에 따르면 올 3월 말 기준 20%가 넘는 금리로 대출을 이용 중인 차주는 239만명, 대출 규모는 16조2,000억원인데 이 가운데 87%에 해당하는 208만명(14조2,000억원)은 매년 4,830억원의 이자를 아낄 수 있다는 계산이다. 반면 나머지 13%인 31만6,000명(2조원)은 앞으로 대출 만기가 돌아오는 3~4년에 걸쳐 제도권 금융을 이용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봤다. 이 중 3만9,000명은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릴 수 있다. 정부는 이런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햇살론과 같은 정책서민금융상품 공급을 2,700억원 이상 확대하고 취약·연체차주에 대한 채무조정·신용회복 지원도 강화할 계획이다. 현재 17.9%인 정책금융상품 금리도 하향조정을 검토한다. 이명순 금융위 금융소비자국장은 “법정 최고금리가 인하되면 ‘햇살론17’ 금리도 내리는 게 맞다고 본다”며 “인하 수준은 추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권의 반응은 비관적이다. 당정이 강조한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시장이 공급할 수 있는 대출 규모가 쪼그라들면서 저신용자가 돈을 빌릴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사라지는 부작용이 훨씬 크다는 것이다. 최철 숙명여대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최고금리가 20%로 낮아질 경우 자산 100억원 이상 대형 대부업체를 기준으로 3조원의 초과수요가 발생한다. 1인당 평균대출액(524만원)으로 보면 약 57만명이 대출을 받고 싶어도 못 빌린다는 얘기다. 금융위 추산에 비하면 시장에서 배제되는 저신용자의 규모가 훨씬 크다. 최 교수는 “금리 인하가 긍정적인 효과를 내려면 가격 규제 후에도 시장이 그대로 유지돼야 하는데 금리를 급격하게 인하하면 시장의 공급량은 크게 위축된다”며 “기존에 연 20%로 대출을 받고 있던 사람조차 앞으로는 못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시장 위축의 조짐은 이미 뚜렷하다. 대부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미 인지도와 리스크 관리 능력이 높은 대형 대부업체들은 신규 대출을 중단한 상태”라며 “현재 등록 대부업체 1,400여곳 가운데 내년 하반기 이후 버티고 있는 곳이 얼마나 될지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저축은행·캐피털·카드사 등 제2금융권도 영향권이다. 캐피털사의 한 관계자는 “수익성을 유지하려면 7등급 이하 고객은 ‘컷오프’ 하고 상환능력과 신용등급이 검증된 사람에게 한도를 더 열어줄 수밖에 없다”며 “소비자 입장에서는 금융의 ‘빈익빈 부익부’가 심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빈난새·이지윤기자 binthere@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