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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 '큰손'의 짧은 투자 호흡, 부작용 크다

이혜진 증권부 차장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은 지난 2017년 국민연금으로부터 날벼락 같은 통보를 받았다. 국민연금이 위탁 운용을 맡긴 1,500억 원 규모의 펀드를 회수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유는 최근 1년 수익률이 벤치마크에 못 미쳐서다. 강 회장은 2002년부터 위탁 운용했던 이 펀드가 15년 누적 수익률 508%를 기록하며 벤치마크 대비 300%포인트 이상 높은 성적을 냈으나 불과 최근 1년 성과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돈을 빼겠다는 국내 최대 ‘큰손’ 투자자의 결정을 납득할 수 없었다. 그는 다른 위탁 펀드까지 합쳐 총 3,000억 원의 ‘항의성 반납’을 단행했다. 당시 기금운용본부장에게 쓴 편지에서 강 회장은 “위탁 운용 성과를 평가할 때 각 펀드가 정체성을 일관되게 지키는지를 따지는 게 바람직한데 국민연금은 지나치게 벤치마크만을 강조하다 보니 대형주 위주로 벤치마크만 좇아가는 ‘게으른 매니저’를 양산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강 회장의 3년 전 편지가 지금 다시 떠오르는 것은 요즘 개인 투자자들로부터 터져 나오는 ‘기관 아닌 개관’이라는 기관투자가들에 대한 원성 때문이다. 주가가 오를라치면 국내 기관투자가들이 무섭게 팔아대며 주가 상승의 발목을 잡는다는 게 지청구의 주 이유다. 물론 기관들도 할 말은 많다. 자산운용사들은 펀드 환매 때문에 선택의 여지 없이 주식을 팔고 있다. 안정적인 투자를 지향해야 하는 연기금은 주가가 내릴 때 사고, 오를 때 파는 게 당연하다.

그럼에도 기관투자가들의 위상과 역할을 고려할 때 아쉬운 대목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장기 투자를 선도해야 할 연기금이 과연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개인 투자자뿐만 아니라 금융 투자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국민연금은 그나마 ‘양반’”이라며 “다른 연기금·공제회 등의 기관투자가들은 3개월·6개월 단위로 코스피지수 대비 5~10%를 밑돌면 바로 자금 회수에 나선다”고 전했다. 그래도 국민연금은 외부의 지적을 받아들여 2017년 말부터는 위탁 펀드 평가 시 1년 수익률을 제외하고 3년과 5년 수익률을 기준으로 해오고 있다. 그러나 다른 기관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해외 주식은 1년까지 기다려주는 경우가 많지만 국내 주식의 경우 인내의 기간이 더 짧다. 그러다 보니 펀드 매니저들도 심도 깊은 기업 분석을 통한 장기 투자보다는 당장 코스피 수익률을 조금이라도 넘을 수 있는 종목을 좇아서 단기 매매를 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한다.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의 투자 호흡이 짧은 데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단기 수익률이 좋지 않으면 자금을 회수해야 하는 규정 때문이다. 행여 수익률이 안 좋을 때 담당자들은 문책을 피하기 위해 무조건 규정을 따를 수밖에 없다. 결국 규정을 뜯어고치지 않고서는 긴 호흡의 투자는 기대할 수 없는 형편이다.

연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가의 위상과 파급력은 개인이나 외국인 투자가와 비교할 수 없다. 이들은 수탁자 책임 강화, 사회 책임 투자를 강조하자 이는 국내 자본시장의 대세가 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장기 투자에 대한 연기금의 ‘선한 영향력’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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