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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秋 장관의 법치주의 몰아내기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선출 권력이 법 초월하는 모양새

결국 집주인마저 피흘리고 쓰러진

영화 '기생충' 시나리오와 닮은꼴





역사적인 과제인 검찰 개혁이 영화 '기생충' 시나리오처럼 변질되고 있다. 영화에서는 자기 일을 묵묵히 하고 있는 운전사를 성 도착증으로 몰아 교체하게 하고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는 가정부를 폐렴 환자로 조작해 쫓아낸 것이 결국은 '기생충' 가족들의 이권을 줄줄이 챙기기 위한 파렴치한 행위였다. 모처럼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하고 있는 검사들을 ‘청와대를 수사하는 건 개혁 세력을 억압하는 행위’라는 프레임까지 씌워 물갈이하고 이제 검찰총장을 쫓아내는 일만 남았다. 그래서 말단 검사가 공소권 유지 차원에서 작성한 문건을 끄집어내어 ‘검찰총장의 심각하고 중대한 비위 혐의’로 둔갑시켜 총장을 직무 배제하기까지 했다. 몇몇 법관들의 성향 및 공개된 세평 등을 공식적으로 모아 공소 유지 관련 부서에 자료를 전달한 것이 불법 사찰 행위에 해당한다는 말인가. 설사 그렇다손 치더라도 이 문건이 총장의 비위 사실에 해당할 만큼 총장의 직접 지시로 작성되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이 문건 작성 당사자는 자신에 대해 아무런 문의나 조사도 행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이 문건이 총장의 직무 배제 핵심 사유로 지목되고 있어 검사로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기생충'들의 속임수에 한두 번 속아주고 인내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 개인이야 실컷 칼자루를 쥐고 하고 싶은 것 다해본 사람이기에 여한이 없을 것이다. 파렴치한 집권 세력이 펼치는 ‘말로만 개혁’ 정치가 실제로는 자기들 이권 챙기기와 권력 비리 숨기기의 핑계에 불과할 때, 양심 있는 공직자들만 피해를 보는 게 아니다. 월성 1호기 폐쇄로 일자리를 잃은 25만 명의 억장과 라임·옵티머스 사태로 투자금을 떼인 개미들의 분노가 총장의 직무 배제로 인해 해소될 길이 없게 됐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피해자의 고혈이 정치권력의 직권남용과 수사 방해에 의해 쥐어짜질 것인가. ‘식물검찰’이 공수처에 의해 접수돼 권력형 비리에 대해서는 손도 못 대는 시대가 예고돼 있지 않은가.

‘조국수호·검찰개혁·공수처 설치’를 외쳐댄 국민도 공범이다. 이 목소리를 등에 업고 정치권력 범죄단이 오늘날의 사태까지 왔다. 자기들끼리의 이권 연합체를 구축하기 위해 겉으로 내세운 구호가 다른 이들의 생활 터전을 부당하게 빼앗고 법치주의를 파괴했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한풀이를 하거나 1980년대 학생운동에 대한 검찰의 탄압에 복수하기 위해 구호를 외친 사람들은 순진한 타입이다. 국가 범죄 집단에 동조하며 떡고물을 챙기고 있는 이권 수탈 세력에 비하면 말이다. 확실한 지지 목소리로 커밍아웃을 할수록 확실히 챙겨주는 정권이니 붙어먹기도 쉽다.



대한민국의 법치주의가 검찰총장에 대한 부당한 직무 배제 하나로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이 사건이 의미하는 맥락인 국가 범죄 집단이 공수처 친위대와 함께 앞으로 벌일 사태가 법치주의의 사망을 예고하고 있다. 법치가 아닌 선출된 권력의 의지가 지배하는 사회, 청와대와 집권당 수뇌부의 지령이 법을 초월하고도 견제 받지 않는 체제로 진군하고 있다.

이제야 여기저기에서 저항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검사들이 또 다른 밥그릇 챙기기로 비치지 않으려면 자기 자신들의 밥그릇부터 던져버리고 법치주의 수호에 나서야 한다. 그동안 진행된 검찰 개혁의 행로를 보면 어쩌다가 '기생충'을 집안에 들였더니 인적 쇄신을 외치며 실제로는 집주인의 눈을 가리고 불손한 의도를 지니는 가족들을 줄줄이 물고 들어와 영원히 점령하려 드는 시나리오가 자꾸 연상된다. 집주인이 피를 흘리고 쓰러져 나가야 영화 같은 현실이 끝이 나는지 모르겠다. 집의 주인인 대한민국 법치주의가 살기 위해서는 죽기 전에 외쳐야 한다. “'기생충'들은 지하실에 숨어 있는 자까지 포함해 다들 짐 싸서 내 집에서 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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