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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두고 온 라일락' 한번 보고 보내긴 너무 아쉬워 [리뷰에세이]




돌이켜보면 인생 절반을 부러움에 취해 살았다. 학창시절엔 공부 잘하는 친구가, 군 시절엔 육사 출신 친구가, 직장인이 되어서는 돈 많이 버는 친구와 명예까지 거머쥔 친구가 부러웠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고 여겼고, 노력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벽이 있다고 믿었다. 내게 라일락의 꽃말 ‘젊은 날의 추억’은 시기와 질투로 가득했다.

시기와 질투마저 자신의 모습으로 흡수한 남자가, 아니 아버지가 있다. 89년 가요대상 수상자 라일락의 이미테이션 가수 라이락(이한위). 본명 라진성보다 라이락으로 더 많이 불렸던, 딸을 위해 생계를 위해 무대에 올랐던 그는 오늘 마이크를 잡던 손으로 택시운전대를 잡고 있다.

미술 잘 한다면 한번쯤 거친다는 유학을 포기하고 취업한 딸 라신혜(정유민)이 애인을 데려온 순간, 그는 15년 만에 라이락, 아니 라일락이 된다. 늦었지만 되돌릴 수 있다고 생각한 순간, 딸의 한번만…한번만 눈 딱 감으면 모든 것이 잘 풀릴 수 있다는 말에 욕심을 품는다. 졸지에 라일락이 되어버린 그는 상견례가 끝나자 다리가 풀려버리고 만다. ‘내가 지금 무슨 일을 한 걸까…’싶다.

15년 전 라일락의 은퇴와 동시에 자신도 무대에 오르지 않겠다는 약속. 철저하고 열심히 지켰으나 “자기 은퇴하니까 너도 모창가수 하지 말라는 그 약속, 그게 내 미래보다 중요해?”라는 딸의 말에 이번만큼은 지켜내기 어렵다. 한번만, 딱 한번만 무대에 오르면 되는 일. 그는 큰맘먹고 다시 라일락같은 라이락이 되기 위해 연습을 시작한다.



오해는 오해를 낳는다. 사돈 측이 수고비를 줬다는 말에 딸이 격분하고, ‘나를 뭘로 보고 돈을 줬냐’는 그 앞에 진짜 라일락이 나타난다. 반가움은 잠시, 후회와 상처가 밀려들고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은 그를 인생 최악의 위기로 빠트린다.

다 딸을 위한 것이었으나 내 탓이다. 아빠가 아빠노릇을 못해가지고, 아빠가 다 못나서…모두가 내 잘못이다. 그런 그 옆에서 무릎꿇은 딸은 “제 이기심이 욕심이 자격지심이 이 모든 말도 안되는 상황을 만들었다”며 눈물 흘린다. 이 말도 안 되는 결혼 사기극에 장단을 맞춘 것이, 자신을 위해 수많은 기회를 포기하고 한 맺힌 마음을 숨기고 살아온 아빠의 마음을 딸은 뒤늦게 깨닫는다.



그에게 라일락은 말한다. 화가 나는게 아니라 오래 묵혀뒀던 노래가 들리는데 심장이 뜨뜻해지더라고. 세상에 한번 나왔으면 그 노래 주인은 내가 아닌건데, 내가 뭐라고 나를 흉내내라 마라 시키고…참 오만했다고. “아빠 대신 무릎꿇어주는 딸내미도 있고, 진성이 자네는 그래도 온전히 세상을 헛산 것은 아닌가보네. 기왕 할거면 라이락 말고 라일락 해야. 이제는 자네가 진짜 라일락 같아보여.”

딸은 한번만 라일락이 되어달라는 자신의 부탁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것이었는지를 깨달았다. 자신도 다시 꿈을 좇을 테니, 라진성의 꿈을 좇으라 아버지에게 당부했다. 거짓 연극이 끝나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무대에 오른 라이락이 아닌 라진성은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이 작품으로 첫 주연을 맡은 이한위는 코믹한 이미지로 익히 알려진 배우다. 1983년에 데뷔한 그가 롱런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던 요인은 ‘전반적으로다가’ 바로 그 캐릭터였다. 방송 전 제작발표회와 ‘아침마당’ 등에서 보여준 진지함은 작품과 꼭 맞아들었다. 딸을 위해, 존경하는 형님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살던 그가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일탈. 그 모든 것이 밝혀진 순간 어쩔 줄 모르며 사과하는 소시민 아버지의 모습은 눈물을 쏙 빼내기 충분했다.

딸 라신예 역의 정유민 역시 처음부터 작품에 푹 빠져있는 모습이었다. 단편임에도 내공이 느껴졌다. 가정환경으로 인해 꿈을 포기하고 질투 속에 살아가던 그가 생애 가장 큰 욕심을 내고, 모든 것이 밝혀진 순간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일련의 감정 변화는 이한위와 꼭 맞아떨어졌다.

본인보다 딸내미의 꿈이 소중했던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는 딸. 일련의 소동극이자 가족드라마로, 대중에 익숙한 이야기구조라는 점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가족극이 잘 만들면 징하게 울리는 맛이 있다. 아주 잘 끓여 한상 놓인 청국장처럼. 단 한번의 방송으로 추억에 잠기기엔 아주 많이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최상진기자 csj8453@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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