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MERS)와 사스(SARS) 등으로 만들어진 방역 체계와 우수한 의료진 등으로 간신히 버텨온 ‘K방역’이 정부의 한 박자 늦은 대응에 무너지고 있다. 일일 확진자 수가 1,000명을 넘어서면서 서울과 수도권 지역의 병상 문제는 현실이 됐고 경증 환자가 머물 생활 치료 센터마저 부족 위기에 처했다. 부동산 문제 등으로 지친 민심의 눈치를 보느라 선제적 대응을 하지 못한 채 확진자가 폭증하면 뒤늦게 거리 두기 단계를 높이며 ‘우왕좌왕’하고 있다. 여기에 아직 백신조차 확보하지 못하면서 사실상 정부가 바이러스에 완패했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상황이 이렇지만 정부는 여전히 거리 두기 격상을 두고 고심만 하고 있어 자칫 국내 코로나19 종료 시점이 주변 국가에 비해 늦어질 것이라는 비관론까지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13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긴급 주재하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는 (거리 두기 단계를 3단계로 격상하는) 경우에 대비해 사전에 준비를 철저히 하고 불가피할 경우 과감한 결단을 해달라”면서도 “사회적 거리 두기를 3단계로 높이는 것은 마지막 수단”이라며 신중론을 취했다.
이날 문 대통령의 발언은 정부가 사회적 거리 두기 격상을 고심하고 있지만 결국 보류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생계 위협 등을 우려한 조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정부의 결정에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10월부터 이어진 느슨한 방역 대책으로 의료 현장에서 병상 부족이 현실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12일 중앙보훈병원에서는 재활 병동 일부를 확진자 전담 치료 병상으로 전환하기 위해 50여 명의 입원 환자에게 퇴원을 요구한 것으로 나타나 물의를 빚고 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문 대통령과 정부는 올해 초부터 충분한 병상을 확보하겠다고 했는데 지난 10개월간 도대체 무엇을 했느냐”며 “1차 대유행 때보다 조금도 개선되지 않은 정부의 무능한 대응에 화가 날 지경”이라고 말했다.
아직 우리나라가 백신을 확보하지도 못한 상황인 만큼 더욱 엄중하게 통제해 유럽·미국 등에서 나타난 파국을 막아야만 백신 접종 전까지 안전하게 유행을 관리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엄중식 가천길대 감염내과 교수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바이러스 전파를 최대한 빨리 막아야 하는데 매번 48~72시간 결정이 늦어지고, 신중하게 검토하는 시간에 적어도 1~2번의 n차 감염이 일어난다”며 “n차 감염이 요양원 등 고위험군 시설에서 발생하면 수십 명이 감염되는데 결정을 지연시키는 요인이 경제 부처라면 결과도 마땅히 책임져야 한다”고 밝혔다. /서지혜·허세민기자 wis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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