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널리스트 시절 IMF 외환위기를 맞으면 엄청난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의 금융정보를 꿰뚫고 앉아서 한국 시장을 주무르는데 우리는 속수무책이었죠. 단편적인 데이터를 모아 통찰력 있는 정보로 재탄생 시키는 일은 중요한 산업이라고 깨닫고, 돈도 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17일 증시에 상장한 에프앤가이드의 김군호 대표는 약 20년 전 회사를 설립하게 된 계기를 이같이 설명했다. 2000년 7월 출범한 에프앤가이드는 현재는 국내에서 리서치 리포트, 주가, 재무, 채권 등 방대한 자본시장 금융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취급하는 사실상 독점 금융정보업체다. 매출액 기준으로 200억원 남짓한 회사이지만 증시 상장의 의미가 남다른 이유다. 이날 코스닥에 입성한 에프앤가이드는 공모가 (7,000원) 보다 83% 오른 1만2,850원에 마감했다.
김 대표는 “‘외국인들은 한국의 단기외채, 기업의 장기 부채, 그에 따른 리스크를 다 알고 있었는데 왜 우리만 몰랐을까’하는 자괴감이 들었다”며 “그들은 데이터를 통해 큰 그림을 보면서 돈을 벌고 있었는데 우리는 그럴 만한 인프라도 없었고 훈련도 안 돼 있었다”고 말했다. 지금도 정보에 대가를 지불하는 문화가 정착되지 않았지만 당시는 더더욱 그랬다. 김 대표는 “금융당국, 거래소, 한국은행, 기업에서 다 공개한 자료인데 왜 돈을 주고 사냐는 반문이 많았다”며 “첫 5년간 적자를 내며 자본금 60억 원을 까먹기도 했다. 그러나 갈수록 데이터베이스의 효율성을 느낀 기관 고객은 한번 계약하면 95% 이상 고객으로 남게 됐다”고 말했다. 결국 탄탄한 B2B비즈니스 구조는 ‘14년 연속 흑자’의 기반이 됐다.
지난 2018년 이뤄진 와이즈에프앤과의 합병은 “넘버원에서 온리원”이 된 계기였다. 그는 “종류만 100억 개에 달하는 데이터를 취급해야 하는 사업을 이제 새로 시작할 회사는 사실상 없어 진입 장벽이 상당하다”며 “해외에서도 데이터업체들은 인수합병 합병을 통해 시장 지위를 공고히 하고 있으며 때문에 높은 주가는 높은 밸류에이션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에프앤가이드의 사업구조는 정보 사업 외에도 다변화돼 있다. 지난해 기준 정보사업 비중이 62%였으며 인덱스 사업 16%, 펀드평가 5%, 기타(금융솔루션) 19%로 분산돼 있다. 특히 상장지수펀드(ETF)·상장지수증권(ETN)에 쓰는 지수 개발(인덱스) 사업 역시 안정성과 성장성이 돋보이는 분야다. 김 대표는 “운용사, 증권사들이 ETF·ETN 시장에 앞다퉈 진입하려고 협의를 해오고 있다”며 “현재 우리가 산출한 인덱스를 추종하는 ETF·ETN이 132개, 8조원이 넘는다”고 설명했다.
리스크는 없을까. 갈수록 높아지는 리서치 리포트의 저작권 보호 추세가 리스크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일부 증권사들은 심층 리포트는 전문 제공을 중단하고 자사 고객들에게만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오히려 이 같은 움직임을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합법적인 유통 경로를 통한 리서치 유료화는 오히려 바라는 바”라며 “생산자인 증권사와 유통사인 에프앤가이드가 윈-윈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자 한다”고 말했다.
기존의 B2B사업은 안정기에 접어든 가운데 이제 에프앤가이드가 주목하는 사업은 개인 투자자 대상 B2C 신사업이다. 이번에 공모한 자금으로 마이데이터 사업과 개인투자자 대상 투자 정보 제공 사업에 투입할 계획이다. 사내벤처로 출범한 ‘크리블’은 투자 정보 구독 서비스로 리포트뿐만 아니라 기사, 개인 인플루언서까지 포괄해 개인 맞춤형 투자정보를 인공지능(AI)으로 요약해서 제공할 예정이다. 김 대표는 “지금은 연못 안의 강자인데, 이제 바다로 나가려 한다”며 “지난 20년간 기관투자자 대상으로 증명한 실력과 신뢰할 만한 업력을 수 백 만 명의 개인투자자 대상으로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혜진기자 has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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