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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통해 세상읽기] 도행지이성道行之而成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땅 위에 사람 다니면 길 만들어지듯

코로나 사태로 확산된 온라인 수업도

초기 혼란 차츰 해소...장점도 발견

어떤 식으로든 행하다 보면 방법 생겨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요즘 사람을 만나면 질문을 많이 받는다. 아직 개학이 좀 남았지만 2021년 1학기는 수업을 어떻게 하는가, 설사 전면적인 대면 수업은 못 한다고 치더라도 신입생끼리 얼굴을 언제 볼 수 있는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지난 2020년을 통째로 보내고 백신과 치료제 개발 소식이 들려오지만 언제 마스크를 벗을까 하고 묻는다. 소상공인들을 만나면 장사를 언제 편하게 할 수 있을지 질문한다.

사실 묻는 사람도 나에게 정확한 답을 바라고서 하는 것은 아니다. 하도 답답하니까 누군가라도 들어보라는 식으로 말을 건네는 것이다. 듣는 나도 그렇고 묻는 사람도 상황이 정확하게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간혹 전문가와 정부가 코로나19가 2021년 하반기에 좋아지리라 말하지만 세계적인 대유행이기에 우리나라만 상황이 좋아진다고 해도 불안이 완전히 가시지 않는다.



이런 환경에서 모든 것을 멈췄다가 코로나19가 종식되고 나서 새롭게 시작한다면 우리는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우리는 상황을 잘 모른다고 하더라도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 앞에 서 있다. 이럴 때 루쉰(魯迅)이 ‘고향’이라는 소설에서 한 말이 위로가 될 수 있을 듯하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한 사람이 먼저 가고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사실 루쉰의 말은 오래전 장자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람들은 삶을 미리 정해진 답이나 선험적인 원칙에 따라 살아간다고 생각했다. 이 때문에 답이나 원칙이 다르면 각자가 옳고 다른 사람은 틀렸다며 싸움을 벌였다. 싸움을 하더라도 삶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으니 불안은 더 커질 뿐 줄어들지 않는다. 이에 장자는 “길은 사람이 다니면 보면 생기게 되고 사물은 사람들이 부르다 보면 그렇게 불리게 된다(도행지이성·道行之而成, 물위지이연·物謂之而然)”고 제안했다. 도와 이름이 먼저이고 삶이 나중이 아니라, 삶이 먼저이고 도와 이름이 나중이라는 뜻이다. 이런 통찰은 멀리 장자나 루쉰의 글과 말에만 있지 않고 가까이에서 늘 들을 수 있는 장기하의 ‘그건 니 생각이고’의 “원래부터 내 길이 있는 게 아니라 가다 보면 어찌어찌 내 길이 되는 거야”라는 노랫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코로나19의 지금 상황도 궁금하지만 이후의 상황도 궁금하다. 그래서 “코로나19가 끝나면 대학의 강의는 어떻게 될까요”라고 이야기하고는 한다. 코로나19가 닥치기 이전 대학의 강의는 주로 강의실에서 대면 수업을 하고 온라인 수업이 약간의 틈새를 메우는 정도였다. 하지만 2020년 1학기 코로나19가 닥치자 모든 수업이 갑자기 온라인 수업으로 바뀌게 됐다. 나는 20년 전부터 사이버 수업을 운영한 터라 2020년의 상황에 비교적 잘 적응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불만과 불평의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왔다.

이제 2020년 2학기를 거치고 2021년 1학기를 앞두고 있는데 교·강사와 학생들은 온라인 수업이 나쁘지만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우선 학생은 시간에 쫓기지 않고 일주일 중 자신에게 편리할 때 수업에 참여할 수 있고 또는 한 번으로 부족하면 두세 번씩 교육 자료를 학습하다 보니 학습 효율이 오른다고 한다. 교·강사도 교육 자료를 제작하다 보니 학기가 지나면 전체적으로 정리가 되기도 하고 자료가 잘 관리된다고 한다. 학교 측은 늘 강의실 부족으로 골머리를 앓았는데 온라인 수업이 활성화되다 보니 여건이 개선됐다고 한다. 온라인 수업이 갑자기 시작됐지만 단점만이 아니라 장점을 발견하게 됐다.

코로나19 상황이 진정된다고 하더라도 대학의 강의는 코로나19 이전의 상황으로 완전히 돌아가지 않을 듯하다. 온·오프라인 수업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면 온라인과 오프라인 수업을 병행하는 방식이 적극적으로 검토될 듯하다. 장기하나 루쉰이나 장자의 말처럼 미리 정해진 어떤 것이 없었지만 어떤 식으로 나아가다 보니 미래의 강의에 대한 길이 생겨난 것이다. ‘도행지이성’이라고 할 수 있다.

/송영규 기자 sk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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