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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이탈한 양이라도 포기하지 않는 것이 교회의 역할"

청주 양업고 초대 교장 윤병훈 신부

개교 23년 만에 처음으로 사제 배출

사제이기 이전에 상식인 되어야 조언

윤병훈 원로 신부.




“우리 사회는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서지 않습니다. 한 마리가 무슨 대수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은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도 배제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머지 아흔아홉 마리의 양이 보고 있기 때문이지요. 예수님이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소중하게 여기셨듯이 그런 학생들을 찾아 올바르게 길러내는 것이 교회의 역할 아니겠습니까.”

충북 청주 양업고등학교의 초대 교장을 지낸 윤병훈 원로 신부는 최근 양업고에서 처음으로 사제가 배출된 것을 성경 루카복음 15장에 나오는 '되찾은 양'에 비유했다. 양업고는 천주교 청주교구가 운영하는 교육부 인가 대안교육 특성화고등학교다. 지난 1998년 소외 계층이나 가출자, 중도 이탈자, 퇴학생 등 '학교 밖 아이들'을 흡수하기 위해 설립된 이 학교가 지난 1월 처음으로 사제를 배출했다. 개교 23년 만이다.

윤 신부는 “양업고는 '땀의 순교자'라 불릴 정도로 생전 전국 팔도를 누비고 다니며 복음을 실천하신 가경자 최양업(1821~1861) 신부님을 롤 모델로 세워진 학교”라며 “최양업 신부 탄생 200주년을 맞은 올해 그의 교육관에 따라 설립된 학교에서 첫 사제가 배출됐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윤 신부는 성직자인 동시에 교육자다. 청주교구 교현동 성당 주임신부 시절에는 가톨릭재단 음성 매괴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윤리 과목을 가르쳤다. 당시 청소년 문제가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자 윤 신부는 청주교구장이던 정진석 주교를 찾아가 학교 밖 아이들을 위한 교육의 필요성을 설득했고, 그렇게 천주교 최초의 대안학교인 양업고가 설립됐다. 교명은 두 번째 한국인 사제인 최양업 신부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지난 1월13일 충북 청주 옥산 본당에서 열린 권환준(사진 왼쪽 두번째) 신부 첫 미사 강론에 나선 윤병훈(오른쪽 두번째) 신부./사진제공=청주교구


양업고 출신 첫 사제가 된 권환준(양업고 9기) 신부는 그가 교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신학교 진학을 위해 직접 추천서를 써준 학생 중 한 명이다. 윤 신부는 제자 권 신부에 대해 “‘교사는 성직’이란 말이 있듯이 어려운 사람들을 밖으로 꺼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내가 권 신부를 대하듯 그 역시 한 마리의 길 잃은 양을 포기하지 않고 찾아 나서는 그런 영속적인 삶을 살아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양업고는 천주교 학교로 출발했지만 ‘문제아들의 학교’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씻어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개교 당시에는 이름 때문에 실업계 학교라는 오해도 많이 받았고, ‘문제아’ 이미지 때문에 교장 추천서를 받은 학생들도 신학대 진학에 실패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윤 신부는 돌아봤다. 현재 양업고 출신 중 신학교에 진학해 사제가 되기 위한 과정을 밟고 있는 졸업생은 11명. 2013년에는 미국 윌리엄 글래서 국제학회에서 아시아권 최초의 우수학교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난 2017년 사목 일선에서 물러난 윤 신부에게 코로나 시대 종교인의 역할에 대해서 묻자 “원로 신부가 돼 교회 밖으로 나오자 교회가 너무 정형화되고 보수화되어 있음을, 계속 쇄신하고 커나가야 하는데 고인물이 되어가고 있음을 생각하게 됐다”는 고백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윤 산부는 권 신부의 첫 미사 강론에서 발표했던 한 구절을 소개했다. “성직자의 권위는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지만, 사제의 권위가 지켜지고 존경 받으려면 신부이기 이전에 신앙인이, 신앙인이기 전에 사회인이 되어 사회인들이 얼마나 피땀 흘리며 사는 지 알아야 하고, 그 이전에 그런 것들을 이해할 수 있는 상식인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성직자가 쇄신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교회가 발전하려면 성직자가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청주=최성욱 기자 secre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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