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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외눈박이 물고기의 동행

취임때 국민통합 외치던 文대통령

진영싸움 부추기는 '문파' 두둔만

극단적 소수가 다수의 상식 잠재워

분열·갈등 봉합할 시간 딱 1년뿐

정민정 논설위원




#지난 1998년 7월 서울 종로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여의도에 다시 입성했다. 10년간 총 3번의 고배 끝에 거둔 짜릿한 승리였다. 하지만 2000년 4월 지역주의 타파를 내걸고 도전한 부산에서 허태열 당시 한나라당 후보에게 패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치인 노무현’을 ‘대통령 노무현’으로 만든 계기는 이날의 패배였다. 당선이 확실시됐던 종로를 버리고 부산으로 가서 떨어진 ‘바보 노무현’을 좋아하게 된 사람들이 모였다. 2년 후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의 시작이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지지자들에게는 지울 수 없는 상처였다. 그를 지키지 못했다는 부채 의식은 ‘제2의 노무현’인 문재인 대통령을 지켜내야 한다는 결연한 다짐으로 이어졌다. 문 대통령 열성 지지층을 지칭하는 ‘문파(文派)’는 이러한 부채 의식을 자양분 삼아 성장했다.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였던 안철수 대표가 탈당해 위기에 처했던 2015년 말 ‘문재인 구하기 10만 당원 운동’이 벌어진 것이 결정타였다.

자발적 시민 모임의 성격이 강했던 노사모와 달리 문파는 정치적 색채를 강하게 드러내며 스스로 권력이 됐다. 2019년 ‘조국 사태’와 지난해 추미애·윤석열 갈등 국면에서 공세를 펼치며 여당 지지층을 결집하는 구심점이었으며 20대 국회 ‘조금박해’ 사례에서 목격했듯 같은 편이라도 역린을 건들면 가차 없이 응징했다. ‘#우리가조국이다’ ‘#우리가추미애다’라는 해시태그 공세로 입시 비리와 병역 특혜 의혹이라는 본질을 가린 채 진영 싸움으로 몰고 갔다. 선정적이며 극단적인 소수의 목소리가 과잉 대표되면서 다수의 상식과 정의는 침묵을 선택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겨냥해 “통제되지 않은 권력은 폭주 기관차와 같다”고 했지만 통제되지 않는 팬덤 권력의 부작용 역시 심각했다. 검찰 개혁을 내세워 윤 총장 찍어내기를 시도했을 때, 헌정 사상 초유의 판사 탄핵을 강행했을 때, 전직 대통령 사면론 철회 때도 어김없이 이들의 입김이 작용했다. 개혁이라는 미명하에 촛불 정신을 파괴했으며 이 땅의 민주주의는 위태로워졌다. 그런데도 조직적 실체가 없다 보니 책임지는 이도, 견제하는 장치도 없다. 문 대통령조차 “경쟁을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양념 같은 것”이라고 두둔했으니 말이다. 더구나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에게 문파의 ‘눈도장’은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친문 커뮤니티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지키는 데 선봉에 서겠다”고 다짐했고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대한민국은 문재인 보유국”이라고 예찬했다. 우 의원은 최근 ‘박원순 롤모델’을 운운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4·7 보궐선거 후보 경선에서 권리당원 비중이 50%에 달하는 만큼 열성 지지층인 권리당원의 호감을 사는 것이 유리하다는 계산을 했을 게다.



시인 류시화는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에서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比目)을 소환해 사랑을 노래했다. 비목은 당나라 시인이 쓴 글에 등장하는 전설의 물고기다. “두눈박이 물고기처럼 세상을 살기 위해/ 평생을 두 마리가 함께 붙어 다녔다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사랑하고 싶다”며 지고지순한 사랑을 소망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외눈박이 물고기가 보는 세상은 한쪽이다. 다른 한쪽의 세상은 볼 수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 문 대통령을 향한 문파의 사랑, 문파를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문 대통령의 애착이 비목의 그것과 겹쳐 보이는 이유다. 외눈박이 물고기는 불완전한 삶을 온전히 살아내기 위해 ‘동행’이라는 선택을 했다. 자신과 반대편을 보는 또 다른 비목과 함께 살아가는 ‘불편한 동거’를 감수한 것이다.

분열과 혐오, 갈등과 절망 속에서 허우적대는 우리 시대에 필요한 것은 이처럼 불편한 동거를 감내하고 통합을 일구는 담대한 용기가 아닐까. 문 대통령은 2017년 5월 10일 취임 선서를 하면서 “국민 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이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유효기간은 이제 1년밖에 남지 않았다.

/정민정 논설위원 jmin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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