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일본을 비롯한 주요국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친환경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면서도 원전은 현상을 유지하거나 되레 확대 정책을 펴는 것으로 나타났다. 탄소 배출이 적으면서 싼값에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원전을 기저 에너지원으로 활용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탈원전에 집착하며 오는 2034년까지 원전 설비 비중을 현재 18.2%에서 10.2%로 떨어뜨리려는 우리 정부와 정반대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4일 G5(미국·일본·독일·영국·프랑스)와 중국·한국 등 7개 국의 에너지 정책을 비교한 결과 탄소 배출을 억제하기 위해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높이고 석탄 화력발전 의존도를 낮추는 기조는 비교 대상국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원전 활용에 있어서는 차이가 명확했다. 우리나라와 독일은 원전 비중을 낮추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세웠지만 나머지 5개 국은 원전을 확대 또는 유지할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변화 대응에 속도를 높이고 있는 미국은 원전 산업 재건을 내걸었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고 이를 위해 재생에너지 비중을 42%까지 늘릴 계획이지만 원전은 이런 정책의 핵심이다. 지난 1월 미국 에너지부가 발표한 ‘원자력 전략 비전’에 따르면 미국은 기존 원전의 가동 기한 갱신을 통한 기존 원전 계속 운영, 원전 발전량 유지, 차세대 원자로 개발, 원전 산업 공급망 확대 등 미국 원전 산업 생태계 재건 방침을 분명히 했다.
원전 비중이 69.4%(2019년)에 이르는 프랑스도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겠다는 전략이지만 원전 포기와는 거리가 멀다. 프랑스는 탄소 배출 감축과 안정적 전력 공급을 위해 기저 에너지원으로 원전을 지속 활용하기로 하고 비중을 50% 수준으로 유지할 계획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해 “원자력은 미래에도 프랑스 전력 공급의 핵심 부문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중국도 경제성장에 따라 늘어나는 전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원전 의존도를 높이고 있다. 중국 에너지연구원에 따르면 중국의 원전 비중은 2019년 4.6%에서 2035년 12.2%로 3배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일본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크게 줄었던 원전 비중을 다시 늘려 2030년까지 20~22%로 확대할 계획이다. 2019년 기준 일본의 원전 비중은 6.6%다. 영국도 풍력발전을 확대하면서도 원전을 탄소 중립 실현을 주요 수단으로 삼고 8개 원전 가동 기한을 연장하고 3개 원전 신규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 국가가 탄소 중립과 원전을 병행하는 것은 원전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으면서 가격은 싸기 때문이다. ㎾h당 전력 구매 단가(5년 평균)는 원자력이 62원이고 석탄은 80원, 태양광은 168원이다.
주요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2034년까지 지난해 18.2%인 원전 비중을 10.1%로 낮출 계획이다. 재생에너지 비중은 15.8%에서 40.3%로 확대한다. 재생에너지의 대부분은 태양광(58.6%)과 풍력(32%)으로 채워진다. 독일도 2030년까지 전체 전력 수요의 65%를 재생에너지로 공급하기로 하고 2022년까지 원전 가동을 전면 중단할 계획이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원전 없는 탄소 중립은 불가능에 가깝다”면서 “정부가 탈원전이라는 명분에 집착해 다가올 전력 불안 리스크를 외면하는 것은 무책임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재영 기자 jyha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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