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대선 경쟁에서 대세론을 형성했던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 당내 유력 경쟁자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격차는 여전히 유지하고 있지만 대권 도전을 가시화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싹쓸이하자 본선 경쟁력에 의구심이 커지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이 지사의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탄탄해 당분간 여권 내 1위 후보 지위는 유지할 것이라는 데 동의하면서도 오는 4월 보궐선거 이후부터 본격적인 위기를 맞이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대선 주자로서 이 지사에 대한 본격적인 경쟁력 검증은 이제부터 시작될 것이라는 평가다.
9일 서울경제 정치 분야 펠로들은 이 지사의 장점으로 ‘타고난 정치적 감각’과 ‘위기 대처 능력’을 꼽았다. 앞으로 정치적 위기가 찾아오더라도 이 지사가 이를 극복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현재 여야 통틀어 대선 후보 중 ‘정치적 맷집(위기 대처 능력)’이 가장 두드러져 보이는 사람은 이 지사와 윤 전 총장”이라면서 “그중에 말 그대로 동물적 정치 감각은 신천지 사태 해결 등에서 보듯이 이 지사가 단연 발군이다”고 평가했다. 장성철 공감과논쟁 정책센터 소장 역시 “이 지사는 다른 민주당 대권 후보들에 비해 결단력이 있고 대중과의 소통 능력이 탁월하다”고 진단했다. ‘현직 경기도지사’라는 신분 역시 이 지사만 갖고 있는 장점이다. 이 지사는 경기도지사라는 특수성을 내세워 당내 예민한 이슈는 상대적으로 피해가면서 재난기본소득 등으로 이슈 메이킹을 주도하며 상당한 지지세를 추가로 확보했다는 평가다.
그러나 4·7 보궐선거 이후 정치권이 대권 모드에 본격 돌입하면 ‘취약한 당내 기반’이라는 약점이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지사가 윤 전 총장을 제치지 못할 것이라는 여론이 형성되면 당내 주류인 친문들의 정치적 공격이 본격화돼 당내 갈등이 한동안 불가피하다는 전망이다. 이 지사는 지난 2017년 대선 경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매섭게 비판한 후 여전히 당내 주류와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여권 관계자는 “야권 후보가 부상할수록 친문 진영에서는 이 지사 견제를 강화하며 다른 후보를 물색하려는 움직임이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민주당 당원의 반영 비율이 절반에 달하는 당내 대선 후보 경선 규칙도 이 지사 입장에서는 만만치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당대 주류인 친문 세력이 이 지사 흔들기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제3의 후보론을 띄울 가능성이 크다”며 “지금까지 대세론을 유지해온 이 지사지만 앞으로 당내에서 거센 도전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시련을 잘 이겨낼 수 있다면 대세론은 유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지사의 위기 요인으로는 ‘윤 전 총장의 부상’에 따른 이 지사의 상승세 둔화 가능성이 꼽혔다. 이 지사가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데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이 지사와 윤 전 총장 모두 반문 성향 중도층의 지지를 받고 있다”면서 “두 후보 모두 중도층에서 호감을 얻고 있는 만큼 한 명이 부상하면 상대방은 지지율 하락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배철호 리얼미터 수석전문위원은 “이 지사 대세론은 중도층과 일부 보수층의 지지가 움직이면서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반문 표심을 윤 전 총장이 상당히 흡수했다는 게 최근 여론조사에서 일관되게 드러난 만큼 이 지사가 당내 주류 세력과 중도층 어느 한 편에도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애매모호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반면 윤 전 총장의 부상으로 내년 대선 구도가 1 대 1로 형성될 경우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이 지사 입장에서는 윤 전 총장으로 지지율이 조금 빠지더라도 조기에 여야 양강 구도가 형성된다는 측면에서 보면 나쁠 게 없다”면서 “윤 전 총장과 이 지사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또 여권 내 유력 경쟁자가 가까운 시일 내에 등장하지 못할 경우 호남 등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의 표심이 이 지사에게로 빠르게 옮겨가는 새로운 정치적 기회가 생길 확률이 높다는 진단도 나왔다.
/박진용 기자 yong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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