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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저금리·저수익' 벽 넘으려면…'디폴트 옵션' 도입은 필수

[막 오르는 연금 투자시대-<중> 제도 바꿔야 수익률도 오른다]

운용지시 없을때 펀드 등 자동투자…저금리 시대 도입 목소리 커져

은행·보험 "원금 손실 위험…원리금 보장형 상품 포함하라" 주장

금투업계 "능동적 수익률 보장 위해 도입…취지 안맞아" 반박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사전 지정 운용 제도(디폴트 옵션)’ 도입이 난항을 겪고 있다. 증권·자산운용사는 실적 배당형 상품 위주로 디폴트 옵션 상품군을 꾸려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은행·보험 업계는 “원금 손실 위험이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29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디폴트 옵션 도입을 두고 이견을 쉽게 좁히지 못하고 있다. 디폴트 옵션에 원리금 보장형 상품을 포함할지를 두고 업계·정당 간 의견 차가 크기 때문이다.

디폴트 옵션은 DC형 퇴직연금 가입자가 별다른 운용 지시를 내리지 않았을 때 사전에 약정된 ‘적격 투자 상품’에 자동으로 투자하는 제도다. DC형 퇴직연금을 방치하지 않고 다른 상품에 자동으로 투자함으로써 수익률을 높이는 것이 핵심 목적이다. 본업 때문에 DC형 퇴직연금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는 투자자 대신 증권사 등이 직접 은퇴 자산을 굴려줌으로써 노후를 보장해주겠다는 취지다.

특히 금투 업계에서는 최근처럼 저금리가 고착화하는 환경에서 퇴직연금 수익률을 끌어올리려면 디폴트 옵션을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실제로 지난 2019년 기준 DC형 퇴직연금 수익률은 2.82% 수준에 불과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만약 과거처럼 고금리가 이어졌다면 디폴트 옵션을 도입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호영·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각각 1월과 지난달 디폴트 옵션을 도입하는 내용의 퇴직급여보장법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적격 투자 상품에 △타깃데이트펀드(TDF) △자산 배분형 상품 △단기금융상품(MMF) △투자 일임형 상품 △인프라 투자 상품을 포함하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지난달 디폴트 옵션 도입 법안은 국회 환노위 법안 소위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은행·보험 업계를 중심으로 반대 의견이 나오면서다. “현재처럼 디폴트 옵션을 실적 배당형 상품 위주로 꾸리게 되면 퇴직연금 원금 손실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 이유다. 실제로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8년 DC형 퇴직연금 중 실적 배당형 상품의 수익률은 -5.52%를 기록하기도 했다. 시황에 따라 연금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은행과 보험사들이 원리금 보장형 상품을 적격 투자 상품에 포함해야 한다고 보는 이유다. 이를 반영해 17일에는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원금 보장형 상품을 포함하는 법안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금투 업계는 DC형 퇴직연금이 보다 능동적인 수익률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됐다는 점에서 ‘원금 손실’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애초에 디폴트 옵션이 겨냥하는 대상이 △DC형 퇴직연금을 활용하면서도 △시장이자율 이상의 수익을 거두고 싶어하는 투자자이기 때문이다. 김동엽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상무는 “디폴트 옵션은 근로자의 선택권을 제약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일차적으로는 가입자에게 어떤 상품에 가입할지 선택권을 주고 이후에 선택권이 없다고 하면 특정 상품에 투자하게끔 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금투 업계에서 반면교사로 삼는 사례가 일본이다. 2018년 기준 일본의 지정 운용 방법 중 원리금 보장형 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76.3%다. 일본은 그해 5월 디폴트 옵션 제도를 도입했는데 오히려 도입 전인 2017년(70.7%)보다 원리금 보장형 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 결과적으로 ‘기대 수익률을 높인다’는 디폴트 옵션의 의미가 퇴색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오무영 금융투자협회 산업전략본부장은 “DC형 퇴직연금에는 반드시 디폴트 옵션이 세트로 들어가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그러지 못했다”며 “원리금 보장형 상품을 편입하면 디폴트 옵션의 기본 취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디폴트 옵션 제도 도입을 놓고 벌어지고 있는 금투 업계와 은행·보험권 간 갈등을 계기로 ‘위험(리스크)’에 대한 새로운 개념 정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상무는 “당장의 원금 손실만을 위험으로 간주할지, 아니면 향후 연금 수익률이 물가·임금상승률에 뒤처지는 것을 리스크로 볼지 토론이 전개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단기적으로는 변동성이 높은 것이 위험해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임금상승률을 못 따라가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손실일 수 있다. 퇴직연금에 대한 리스크 정의가 새로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확정급여(DB)형 퇴직연금의 투자 일임 자산운용기관 선정을 두고도 은행·보험 업계와 금투 업계 사이의 입장 차이가 크다. 안 의원은 개정안에서 DB형 퇴직연금을 설정한 사용자(기업)가 ‘자산운용기관’과 적립금 운용 관련 투자 일임 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자산운용기관은 증권·자산운용사 등이다. 그러나 은행·보험사들은 2016년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투자 일임업 인가를 받았던 사례를 들면서 퇴직연금 자산운용기관 자격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금투 업계에서는 “DB형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자산운용기관을 세우자는 것”이라며 “운용 성과나 전문성이 상대적으로 뛰어난 증권·자산운용 업계가 맡는 것이 타당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저조한 DB형 퇴직연금 수익률이 기업 활동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가령 한 기업의 기대 임금상승률이 4%인데, DB형 퇴직연금 수익률이 2% 수준이라면 나머지 2%를 기업이 채워줘야 한다. DB형 퇴직연금은 기업이 근로자의 퇴직연금 원금을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DB형 운용수익률이 저조하면 그만큼 당기순이익, 주주 배당, 투자 여력도 줄어들게 된다”고 말했다.

/심우일 기자 vit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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