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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정치화'에 공무원 전문성 흔들…포퓰리즘 제어장치 무너진다

[무너지는 관료사회-(상) 방향 잃은 '정책 나침반']  

코로나·경제·부동산 등 해법모색 급한데

   당청 일방통행식 정책 하달로 '관가 패싱'

   주요부처 목소리 못내…국민 피해 불보듯





지난달 아파트 전세금 인상 문제로 퇴임한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에 대한 여당과 시민 단체의 업무 평가는 대체로 인색하다. 그의 전임이었던 장하성·김수현 실장이 ‘소득 주도 성장’과 같은 적극적 개혁을 추진한 반면 김 전 실장은 관료들에게 포획돼 제대로 된 개혁 의지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 근무 경험이 있는 관료들의 설명은 다르다. 그래도 김 전 실장은 다른 ‘낙하산’ 실장들과 달리 관료들의 전문성을 존중하고 이들의 의견을 정책에 반영하는 정도의 현실감각이 있었다는 것이다. 과거 정권에서 경제부총리를 지낸 한 전직 고위 관료는 5일 “정책 결정 과정에서 공무원들이 가진 전문성을 배격하면 모든 정책이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으로 흐르게 된다”며 “김 전 실장은 관료에게 포섭당한 게 아니고 그들의 합리적 의사 결정에 동의한 것”이라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 복합 위기의 틈바구니에 낀 우리 경제가 다시 한 번 도약하기 위해 황폐화된 관료 사회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엘리트 집단인 경제 관료가 제 목소리를 내야 제대로 된 위기 극복의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박근혜 정부 때 국무조정실장과 기획재정부 1차관을 지냈던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은 “우리나라 경제 관료들의 역량이 떨어져 정책의 품질이 하락하고 있다는 진단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며 “정책 수립 과정에서 일방적으로 덧칠해진 정치색을 빼고 공무원이 자율적으로 자신들의 창의성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면 부동산 등 다양한 경제문제들을 풀어낼 해법이 나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경제가 인터뷰한 관료들은 먼저 정책을 만드는 공무원조차 동의할 수 없는 일방통행식 당청의 정책 하달부터 멈춰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지적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2주택자를 ‘죄인’으로 모는 징벌적 과세 체계와 같은 ‘억지 춘향’식 정책 수립이다. 예를 들어 최근 1급으로 승진한 한 정부 부처 고위 관료는 배우자가 어머니로부터 상속 받아 보유하고 있던 서울 아파트의 공동 지분 50%를 어머니에게 다시 증여하고 증여세 수천만 원을 물었다. 청와대가 인사 검증 과정에서 2주택자는 탈락시키기로 내부 검증 기준을 마련해서다. 이 관료는 공무원직을 그만두는 날이 오면 이 지분 50%를 다시 상속받을 예정이다. 물론 이때 상속세를 또 내야 한다. 다주택자와의 전쟁을 선언한 여당의 ‘이상한’ 기준 때문에 결과적으로 집 0.5채에 세금만 세 번을 납부하게 되는 셈이다.



기재부에서 세금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한 사무관급 공무원은 “집 두 채 가진 사람을 왜 세금으로 징벌해야 하느냐고 친구들이 물어보면 솔직히 할 말이 없다”며 “위에서 시킨 대로 일은 하지만 스스로 논리가 서지 않으니 정합성을 갖춘 대책을 만들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가 마련한 경제 대책을 여당과 청와대 내 ‘어공(어쩌다 공무원)’들이 손바닥 뒤집듯 하는 일이 반복되는 것도 정책 품질 저하의 원인으로 꼽힌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홍두사미(홍남기+용두사미)’ ‘9전9패(청와대 및 여당과 맞부딪친 정책에서 모두 뒤로 물러섬)’와 같은 불명예스러운 별칭을 얻게 된 배경에도 사실은 제어장치가 망가진 거대 여당의 폭주가 있다는 게 관료들의 지적이다.

당장 홍 경제부총리는 지난달 발표한 올해 첫 재난지원금 편성안에 ‘농어민 일괄 지원 계획’을 포함시키지 않았지만 여당의 강한 공세에 밀려 결국 지원금 지급 계획에 찬성했다. 선거 이후 당청이 추진할 것으로 보이는 전 국민 재난위로금 지급에도 기재부 내에서는 반대 기류가 강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서 “위로금을 주겠다”고 선언한 마당이라 “반대 논리를 만들어봐야 의미가 없는 것 아니냐”는 체념의 목소리가 강하다.

무엇보다 관료들에 대한 운동권 출신 여당 핵심 세력들의 뿌리 깊은 불신부터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2019년 이인영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와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의 ‘말실수’가 이런 불신을 보여주는 사례다. 당시 이 원내대표와 김 실장은 한 공개회의에 참석해 마이크가 켜진 줄도 모르고 “정부 관료가 말을 듣지 않는다. 잠깐 틈을 주면 엉뚱한 짓을 하고…” 등의 ‘속내’를 털어놓다가 외부에 공개돼 곤경을 치러야 했다.

경제 부처 출신으로 국내 대형 로펌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전직 관료는 “여당 출신 정책보좌관들이 사실상 장관의 ‘문고리’ 겸 과거 국정원 정보관(IO) 역할을 하면서 정부 정책 수립 과정을 감시한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공무원들이 국가정책을 만든다는 자부심을 갖기 어렵고, 이렇게 되면 결국 국민들이 최대 피해자가 된다”고 말했다.

/세종=서일범 기자 squi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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