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제1원전에 보관 중인 방사성 물질 오염수를 방류하기로 결정했다. 130만 톤이 넘는 오염수를 30여 년에 걸쳐 태평양에 버린다는 계획이다. 다핵종제거설비(ALPS)로 방사성 물질을 기준치 이하로 낮추고 제거가 힘든 삼중수소는 물에 희석해 방출한다지만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알 길이 없다. 이외에는 더 이상 마땅한 해결책이 없다는 일본 정부의 변명이 궁색하다. 방류를 결정하기 며칠 전 일본 경제지 니혼게이자이에 실린 “일본이 후진국으로 전락했다”라는 익명의 칼럼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일본의 결정은 인류에게 또 하나의 난제를 떠안겼고 우리 한반도를 총체적인 물의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독일 헬름홀츠해양연구소는 방류된 오염수가 해류를 타고 우리 해역에 되돌아올 것이라 내다봤다.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200일 만에 제주도에 유입되며, 280일 후에는 동해에 도착한다. 내륙의 물 사정도 여의치 않다. “물 쓰듯 한다”는 속담은 이제 옛말이다. 우리나라는 1인당 이용 가능한 수자원량이 1488m3에 불과하고 하천 취수율도 36%로 낮은 ‘물 스트레스’ 국가다. 더구나 지구 온난화와 기상 이변으로 수자원 사정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오랜 가뭄으로 반도체 생산 중단까지 걱정하는 대만의 형편이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다.
KIST는 물 위기의 해답을 찾기 위해 미래형 인공 강수에 대한 원천기술 연구개발을 시작하고 있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신소재, 계산과학 기술 등을 융합해 물 자원의 안정적 확보와 함께 더이상 홍수, 가뭄, 폭설 같은 기상이변에 인명과 재산이 피해를 입지 않는 안전한 미래를 꿈꾸고 있다. 지금 우리가 가진 기술로는 불가능한 연구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허황되다 무시하는 룬샷(Loon shots) 아이디어가 우주선을 달에 보내고 스마트폰과 인터넷, GPS를 현대 문명의 근간으로 만든 문샷(Moon shots) 프로젝트의 씨앗이 됐다.
우리나라는 올해 2월 발표된 2021 블룸버그 혁신지수에서 세계 1위로 평가받았다. 연구개발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이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작은 성공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끊임없이 과학기술계의 목소리를 경청하며 국가 R&D에 대한 국정철학과 의지를 계속해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을 포함한 공공 연구부문이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며 인류의 지평을 넓히는 빅사이언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원대한 목표(Moon shot)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비현실적으로 보일 만큼 과감한 프로젝트(Loon shot)를 추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오늘은 제52주년 과학의 날이다. 이제 한 차원 더 높은 단계의 국가 연구개발을 생각해야 할 시기다. 더 이상 과거의 성공방정식으로는 새로운 시대로의 이행을 기대하기 어렵다. “고대 대장간과 중세 대장장이의 풀무로 현대식 발전기를 만들 수 없다”는 루스벨트 대통령의 명언은 언제나 진리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성과가 없을지라도 장기간에 걸쳐 끈기 있게 매달릴 수 있는 도전과 희망의 빅사이언스를 고민할 때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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