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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문특파원의 차이나페이지] <88> '붉은 관광'으로 지역경제 육성에 中共 정당화까지…과거회귀는 '독'

■공산당 창당 100주년에 뜨는 中 홍색관광

지난 8일 중국 장시성 징강산혁명박물관을 방문한 관광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8일 중국 남부 장시성 징강산(井岡山)시의 ‘징강산혁명박물관’에 중국 주재 외신 기자들이 모였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로이터통신 등 해외 25개사에 39명이 참가했다고 한다. 징강산은 중국 공산당의 대표적인 혁명 유적지다. 외신 기자들은 박물관과 함께 징강산간부학원(당교), 주변 농촌 등을 둘러봤다. 이후 장소를 옮겨 구이저우성의 쭌이도 방문했다. 징강산은 국공내전 상황에서 마오쩌둥이 지휘하는 공산당 홍군(인민해방군의 옛 명칭)의 주력 부대가 국민당의 국민혁명군을 막아 ‘해방구’를 유지한 지역이다. 쭌이는 대장정 과정에서 마오쩌둥이 공산당 당권을 거머진 곳이다. 징강산과 쭌이 모두 최근 중국에서 불 붙고 있는 ‘홍색관광(중국 명칭은 紅色旅游)’의 대표적인 목적지다.

이번 외신기자들의 팸투어를 기획한 곳은 중국 국무원 신문판공실이다. 신문판공실은 “(기자들이) 중국공산당의 분투 역사를 이해하고 공산당인의 정신과 풍모에 감동했다”고 적었다. 중국 관영 매체들도 이날 외신 기자들이 혁명유적지를 “참관”하고 “학습”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지난 8일 중국 국무원 신문판공실의 ‘홍색관광’ 팸투어에 참가한 외신 기자들이 징강산혁명박물관을 둘러보고 있다. /국무원 신문판공실


중국 공산당과 정부가 홍색관광 붐 조성에 사활을 걸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가라앉은 관광산업의 부흥 및 내수경기 회복이 목표다. 여기에 올해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아 공산당 독재 체제에 대한 정당성 확보를 위해서도 이런 ‘붉은 관광’을 독려하고 있다.

홍색관광은 일종의 ‘문화유산 관광(heritage tourism)’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나라나 자신들의 과거 역사적 문화유산을 보고 배우는 관광이 조직돼 있다. 중국에서 특이한 것은 이러 문화유산 관광이 공산당이라는 특정 집단에 특화돼 있다는 것이다. 즉 공산당 유산·유적 관광이다. 중국 공산당의 상징이 홍색이기 때문에 ‘홍색관광’이다. 비슷한 붉은 색 계통이지만 러시아의 ‘적색’과는 달리 중국에서는 ‘홍색’이 보편적이다. 그래서 러시아 공산당의 적군과 달리 중국 공산당 군은 홍군이다.

물론 공산당이라는 특수집단을 앞세우기 때문에 불편한 시선도 만만치 않다. 공산당보다 오랜 시기 동안 존재했던 중국 국민당의 역사가 왜소화하는 것과 함께 공산당 이전의 역사는 ‘구중국’이라는 말 한마디로 축소된다. 때문에 홍색관광지에 대해서는 이른 시기부터 역사왜곡 논란이 있었다. 홍색관광객에 대한 쇼비니즘(맹목적 국수주의) 시각도 있다.

홍색관광은 중국 공산당이 주도하는 것이다. 올초부터 중국 공산당은 공산당 역사 배우기를 전 국민적인 운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책에서 배우는 것에서 더해 현장학습으로 홍색관광이 유행하게 된 셈이다.

지난 2월 20일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이 직접 참석한 당 역사 교육 행사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시 주석은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은 것을 계기로 당사 학습은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며 “전 당원은 당사 학습을 충실히 해 새로운 국면을 열어야 한다”고 지시했다.

그는 “당사를 학습하는 것은 당의 초심과 사명을 실천하는 것”이라며 “당원의 당사 학습은 당의 정치 생활 중에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미중 갈등 등 외부적인 압력이 커지는 상황에서 공산당을 중심으로 중국인들이 결집해야 한다는 이야기인 셈이다.

결국 이렇게 해서 당 역사 학습으로서 일종의 체험학습인 홍색관광도 당원의 의무가 됐다. 당원이 아닌 사람도 마찬가지로 해야 하는 상황이다. 각 지방정부는 앞다투어 공산당 유적지를 단장하고 또 관광단을 조직했다.

중국 문화여유부(문화관광부) 집계에 따르면 시진핑의 지시 이후 쓰촨성은 올해를 ‘홍색관광의 해’로 정하고 대장정 길 답사 등 17건의 홍색 주제 관광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마오쩌둥이 이끄는 홍군은 대장정 후퇴 과정에서 특히 쓰촨성 인근에서 많은 고생을 했기 때문에 덩달아 유적지도 많다. 홍군이 대장정 이후 정착한 산시성도 시진핑의 부친인 시중쉰 등을 내세우는 다수의 상품을 만들었다.

공산당의 역사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듯한 산둥성이 성내 홍색 관광구를 묶는 홍색관광 노선 100선을 발표하고, 위구르족의 인권탄압 논란을 부른 신장위구르도 관내 12곳의 홍색관광지로 지정했을 정도다. 중국 전체에서 홍색관광 광풍인 셈이다.

중국 장시성 징강산시의 한 식당에 젊은날의 마오쩌둥 사진이 걸려 있다. /EPA연합뉴스


이와 관련, 지난 3월 운행을 계시한 ‘판다 열차’는 홍색관광의 고급화로서 주목을 받았다. 열차 전체를 판다로 디자인하고 최고급으로 꾸민 이 열차는 쓰촨성 성도인 청두에서 구이저우성을 돌아 다시 쓰촨성으로 돌아 오는데 핵심은 쭌이다. 관영 차이나데일리는 이 열차가 “위인들의 옛 집과 전투지역 등 ‘홍색 경관구’를 지나면서 과거 영광스러운 역사를 추체험할 수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코로나19 이전인 지난 2019년 중국내 홍색관광 연인원은 14억1,000만이었다. 당시 중국 국내관광 인구가 60억1,000만명이었음을 감안하면 23.5%가 홍색관광으로 분류되는 셈이다. 물론 홍색관광이 아님에도 홍색관광 지역을 방문한 사람도 있겠지만 그래도 대단한 수치다.



중국에서 ‘홍색관광’이라는 용어가 정착한 것은 2004년으로 알려졌다. 당시 중국 정부가 ‘2004~2010년 전국 홍색관광 발전계획 요강’을 발표하면서다. 그동안 지방정부와 각 단체들 사이에서 산발적으로 이뤄지던 홍색관광을 국가 차원의 전국적 사업으로 추진한 것이 이 계획이었던 셈이다.

실제로서의 홍색관광은 1980년말부터 1990년대 초에 중국의 일부 도시를 중심으로 공산당 혁명 유적지를 도는 관광으로서 시작됐다고 한다. 한국 등의 문화유산 관광과는 다소 다른 패턴이었는데 이는 중국 역사의 차이에 있다. 당시는 중국 현대사의 최악의 동란으로 기록된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개혁개방이 시작된지 10여년이 되는 시기였다. 개혁개방이 결국에는 국가경제에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졌지만 모두가 이를 향유하지는 못했다. 개혁개방으로 커지는 빈부격차와 소외감은 일부 계층에게 좋았다고 생각되던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켰다.

공산당과 혁명의 첫 시작을 찾아간 찾아간 곳이 바로 지금의 홍색 관광지였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민간 차원에서 진행됐지만 중국 정부는 이의 중요성을 곧 알아차렸다. 이를 중국 공산당과 사회주의의 선전 기회이자 지역경제 활성화 기회로 인식한 것이다.

곧바로 홍색관광 조직에 중국 정부가 개입했다. 중앙의 관련기관과 지방정부, 여행사가 연결됐고 사람들을 모았다. 사람들은 관광을 즐겼고 여행사와 해당 지방정부는 돈을 벌고 정부는 체제 정당성을 선전했다. 홍색관광 대상지는 대부분 오지의 시골이라는 점에서 농촌개발의 효과도 있었다.

현재 중국 공산당 안에 ‘전국홍색관광사업협조소조’를 두고 관련 기관과 지방정부의 관광정책과 관광지, 관광이동을 조율한다. 홍색관광지는 시기상으로 1921년 공산당이 창당된 상하이에서 대장정의 경유지를 거쳐 1949년 마지막 점령지인 베이징 톈안먼광장까지 망라돼 있다. 일출시와 일몰시에 진행되는 텐안먼광장의 중국 국기(오성홍기) 게양식과 하강식은 최고의 홍색관광이다.

물론 이후 시기의 홍색관광지도 적지 않다. 마오쩌둥이 학습하자고 했던 군인 레이펑의 유적이라든지 문혁 시기 농업모범촌이었던 다자이 등 현재도 이런 저런 이유로 홍색관광지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스스로가 공산당원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공산당에 우호적임을 나타내기 위해 아예 집단적으로 군복을 입고 여행을 하기도 한다. 개인적인 호감으로서 홍색관광지를 둘러보는 경우도 많다.

경제적 면에서도 홍색관광이 중요하다. 홍색관광지는 대부분 시골인데 미개발지가 많다. 홍색관광을 통해 중앙·지방정부들이 돈을 쏟아 붇고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덩달아 지역개발이 되는 상황이다. 관광자원이 별로 없는 내륙 지역에서 특히 홍색관광에 목숨을 거는 이유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아 지난해 중국 관광산업은 거의 괴멸수준에 이르렀다. 지난해 중국 국내관광 연인원은 28억8,000만명으로, 2019년의 48%에 불과했다. 중국 정부가 올해 홍색관광이라도 해서 관광산업을 키워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코로나19 팬데믹에서 점차 회복되면서 홍색관광은 한층 활성화 될 것으로 보인다. 홍색관광을 즐기는 연령층이 점차 내려오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언뜻 보기에는 과거에 집착하는 노년층에서 수요가 많을 것으로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우선 학생들에게는 일종의 수학여행 같은 단체 여행이 주어지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홍색여행을 하는 사람이 많다.

문화여유부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6~2020년 5년 동안 홍색관광에서 20~39세가 차지한 비율은 57.3%나 됐다. 특히 학생들의 비중이 높았다. 베이징과 상하이, 창사, 징강산, 옌안, 쭌이, 샤오산, 루이진 등이 최고의 홍색관광지였다.

지난달 양회에서 확정된 ‘제14차 5개년(2021~2025) 계획과 2035년 장기목표 요강’도 홍색관광에 대한 집중적인 지원을 확인했다. 옛 혁명 지역의 진흥과 특색산업 발전을 통해 홍색 문화를 널리 발전 전승한다는 취지다.

지난 15일 중국 산둥성 칭저우에 오픈한 국가안보교육센터를 관람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당연히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홍색관광 한다면서 과거 홍군의 군복을 입고 떼지어 관광지를 돌아다니는 모습이 일부 중국인은 물론 외국인에게 곱게 비치지는 않기 때문이다. 시진핑의 권력강화와 이미지가 겹치며 중국이 과거 마오쩌둥 시대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중국에 ‘독’이 된다. 중국에서의 ‘애국’이 외부에서는 ‘광기’로 보인다는 것이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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