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직 관리자 A씨는 2018년 5월 차 안에서 수면제를 과다복용 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근로복지공단은 지난해 7월 A씨의 죽음을 정신질환으로 인한 산업재해로 인정했다. A씨는 입사 이후 우울증 치료를 계속 받았고 목숨을 끊기 수개월 전부터 업무량이 급증해 야근을 반복했다. 근로복지공단의 한 관계자는 “A씨는 장비의 작동 불량으로 생산이 차질을 빚자 장시간 일을 했다”며 “높은 수준의 스트레스를 받은 것으로 나타나 산재로 인정됐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 첫해인 지난해 정신질환 산재 신청이 2년 만에 두배 가량 늘어 통계 작성 이래 최대로 뛰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고용 불안, 생계 걱정이 커지면서 불안감과 우울증을 호소하는 근로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2일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정신질병 산재 신청은 지난해 517건(11월 말기준)으로 2019년 331건 대비 56.2% 증가했다. 2018년 268건과 비교하면 두 배 가량 급증했다.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대다. 산재 승인율도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2014년 34.3% 였던 산재 승인율은 지난해 67.9%까지 치솟았다.
지난해 승인된 질병을 보면 적응장애가 150건으로 가장 많았다. 적응장애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사건을 경험한 후 나타나는 반응이다. 불안, 우울과 밀접한 적응장애는 2019년 78건보다 두 배 넘게 뛰었다. 대표적인 정신질환인 우울증은 98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도 47건을 기록했다.
코로나19 사태 장가회로 불안감과 우울감을 호소하는 국민이 늘고 있다. 경기연구원이 지난 3월 국민 2,000명(20세 이상)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55.8%가 ‘코로나 19로 인해 불안하고 우울하다’고 답했다. 연구원이 지난해 4월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나온 47.5% 보다 10%포인트 가까이 증가했다. 올해 조사에서 응답자의 8.3%는 ‘코로나 19로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했다’고도 답했다. 극단적인 선택까지 생각한 이유에 대해 ‘경제적 어려움과 스트레스’라고 답한 비율은 43%로 전체 응답자의 절반 수준이다.
국내 일자리의 99%를 차지하는 중소기업 근로자가 대기업 보다 코로나19로 인한 우울감을 더 느끼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최근 근로복지공단이 7개 중소기업 근로자 184명 대상으로 스트레스 자각 척도를 점수화한 결과, 평균 점수는 19.65점으로 대기업을 포함한 일반 기업 노동자 14.62점을 크게 웃돌았다. 고용 불안과 임금 감소, 재택 근무 불가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 강도가 더 컸다는 해석이다.
근로자들의 코로나 블루는 갈수록 심화되는데 이를 지원하고 대응할 체계적인 인프라는 여전히 미흡하다. 일자리 부처인 고용노동부에는 청년, 여성, 고령자 등 일자리 취약계층의 고용 불안에 따른 코로나 블루 대응을 위한 전담 조직이 없다. 전국에 분포된 근로자건강센터 등에서 이뤄지는 상담 인력도 부족하다. 노동단체도 정신질환 전문가를 찾기 어렵다. 고용부의 한 관계자는 “산재는 중독과 같은 화학 분야에서 주로 발생하다가 사회 변화에 따라 정신질환 산재로 무게가 옮겨가고 있다”며 “(정부나 기업 등의) 조직이나 인력은 이런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기 부족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세종=양종곤 기자 ggm11@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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