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양대 영화상 중 하나인 골든글로브가 78년 역사상 가장 큰 위기를 맞았다. 부정부패 의혹과 인종·성차별 논란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며 할리우드 영화계에서 중계 중단과 트로피 반납 등 골든글로브 보이콧이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NBC·워너브러더스 보이콧 선언…파문 확산= 10일(현지시각)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 NBC 방송은 내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을 중계하지 않기로 했다. NBC는 지난 1993년부터 매년 시상식을 방영해왔으며, 이 상을 주관하는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와 지난 2018년 6년짜리 장기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NBC는 이날 성명을 통해 HFPA가 최근 발표한 개혁안이 충분하지 않다며 “HFPA가 제대로 변화하기 위해선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고 했다.
이날 영화제작사 워너브러더스도 골든글로브 보이콧을 선언했다. 할리우드 메이저 제작사 중에서는 최초다. 워너브러더스와 케이블채널 HBO를 소유한 워너미디어는 성명을 내어 골든글로브의 인종차별, 성차별, 동성애 혐오 논란 등을 지적하며 “HFPA가 주관하는 행사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앞서 넷플릭스와 아마존 스튜디오, 할리우드 스타들을 고객으로 둔 100여 개 홍보대행사들도 골든글로브 보이콧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부패·차별 의혹 일파만파…'미나리' 홀대 지적도= HFPA는 시상식 운영 및 재정 관리가 투명하지 않다는 지적을 여러 차례 받아왔다. 지난 2월 제 78회 시상식을 앞두고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는 HFPA의 부패 스캔들을 보도했다. HFPA가 회원들에게 정기적으로 상당한 액수의 돈을 지급해 윤리 규정 위반 논란이 불거졌고, 지난 2019~2020년 지급액만 무려 200만 달러(22억 2,000만원)에 달한다는 내용이었다. 2019년에는 30여 명의 회원이 파라마운트 협찬을 받아 파리로 호화 외유를 떠난 사실도 드러났다.
인종·성차별 논란도 재조명됐다. 87명의 HFPA 회원 중 흑인은 단 한 명도 없으며, 올해 각종 시상식에서 호평을 받았던 영화 ‘미나리’를 외국어 영화로 분류해 작품, 감독, 연기상 후보에서 배제하기도 했다. 마블 히어로 영화 ‘블랙 위도우’의 주인공 스칼렛 요한슨은 성명을 통해 “과거 HFPA의 일부 회원들로부터 성차별적인 질문을 받았고 성희롱을 당하기도 했다”며 영화계의 골든글로브 보이콧을 촉구했다.
◇설익은 개혁안에 역풍…톰 크루즈 ‘트로피 반납’= 논란이 거세지자 HFPA는 지난주 자체 개혁안을 발표했다. 오는 8월 까지 새 대표를 선임하고, 1년 이내 흑인을 포함해 신규 회원 20명을 추가하며, 새로운 행동 강령을 만들며 다양성과 성희롱 교육을 제공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할리우드 영화계는 해당 안이 개혁 요구에 미치지 못한다고 비판하며 보이콧을 이어갔다.
보이콧 운동에는 할리우드 스타들도 동참했다. 배우 톰 크루즈는 영화 ‘제리 맥과이어’, ‘7월 4일생’에 출연해 받은 두 개의 남우주연상과 ‘매그놀리아’로 수상한 남우조연상 등 3개의 트로피를 모두 HFPA에 반납했다. 마블 히어로 영화 시리즈의 ‘헐크’ 역할로 잘 알려진 배우 마크 러팔로는 성명을 내고 "HFPA가 변화에 저항하는 것을 보게 돼 실망스럽다"고 비판했다.
HFPA가 과감한 개혁 조치를 신속히 내놓지 않으면 더 큰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됐다. 영화 매체 스크린랜트는 "할리우드가 HFPA를 완전히 거부한다면 골든글로브의 종말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홍연우 인턴기자 yeonwoo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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