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와 중앙은행의 입장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이 지난달 4일 경제 상황에 비해 금리가 낮다는 평가를 내리는가 하면, 제롬 파월 의장은 일부 자산시장에 작은 거품이 끼어 있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얼마 전 공개된 4월 FOMC 회의록에서는 이미 미국 연방준비위원회의 자산매입 규모를 축소하는 ‘테이퍼링’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음이 밝혀졌다.
당연히 이러한 소식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모두 글로벌 증시에 악영향을 줬다. 국내 증시 역시 역사적 고점을 경신한 후 4~5% 떨어졌다. 낮은 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이 주가를 비롯한 자산가격 상승을 이끈 주된 요인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왜 이러한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일까. 그들의 마음을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는 없지만, 시장 일각에서 생각하듯 물가 통제나 가격 거품 측면에서 실패를 우려한 급한 마음이 이들의 입장을 바꾼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최근 이어지고 있는 이들의 발언과 신호는 고용시장과 금융시장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계산된 전략’이라는 판단이다.
잘 알려진 대로 우리나라나 유럽과 달리 미국 중앙은행은 물가 안정을 핵심적인 목표로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고용시장이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할 수 있다. 한 나라의 경제가 달성하려는 궁극적인 목표는 국민들의 완전 고용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당연한 일이다. 각국 중앙은행이 물가를 주된 정책 목표로 삼고 있는 것 역시 따지고 보면 높은 물가 상승이 경제, 궁극적으로는 고용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70년대의 경험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즉, 문제는 고용에 좋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을 조절하는 것이 중앙은행의 목표이지, 물가 그 자체가 목표는 아니라는 얘기다.
게다가 지난 2000년대 초 정보기술(IT)버블 붕괴 이후, 그리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경제는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구조적인 물가 하락 압력에 시달려 왔다. 오히려 낮은 물가와 이를 반영한 낮은 시장금리가 자산시장에 거품을 초래했던 점이 연준으로서는 더 큰 실패였다.
작년 8월에 나온 연준의 장기 목표가 완전 고용에 더 큰 방점을 찍고 있는 점도, 이 같은 인식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결국 최근 미국 재무부 장관과 연준 의장, 그리고 FOMC의 입장 변화는 물가 상승을 잡기 위해서라기보다 자산가격에 이미 끼어 있거나, 앞으로 낄 수 있는 작은 거품을 해소하기 위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계산된 크기와 시점의 신호가 나오고 있다는 점은 이를 의미한다. 물론 물가는 여전히 중요한 경제 현상이며, 물가보다 자산가격 거품에 더 초점을 맞춘 현재의 전략이 완전 고용이라는 목표 달성에 더 적합한 것인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어쨌든 지금의 물가 상승은 일시적일 것이라는 미국 정부와 중앙은행의 전망이 틀리면, 급한 정책의 변경이 나타날 가능성도 남아 있다. 이미 이러한 성격을 실패를 우려하는 전문가들도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자산시장의 안정 노력은 장기적으로 자산가격에 나쁘지 않다. 급격하고 추세적인 하락을 억제하기 때문이다.
/최석원 SK증권 리서치센터장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