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분기 대만 시스템 반도체 규모는 크게 증가한 반면 국내 팹리스 업계는 적자 행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팹리스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파운드리 확대와 고급 인력 양성 등 실질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6일 대만반도체협회(TSIA) 자료에 따르면 올 1분기 대만 IC 디자인(칩 설계) 업계 매출은 2,602억 대만달러(10조 4,704억 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9.1%나 성장했다. 대만반도체협회는 대만의 올해 칩 설계 시장이 지난해보다 30.5%가량 더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대만 팹리스 업체 대들보인 미디어텍은 지난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248.1% 증가한 202억 대만달러(약 8,100억 원)를 기록했다. 고객사 칩을 대신 설계하는 글로벌유니칩(GUC)과 알칩(Alchip)의 활약도 두드러진다.
반면 국내 시스템 반도체 업계의 시름은 깊어지고 있다. 지난 2019년 4월 정부의 시스템 반도체 육성 전략 이후에도 기업들의 형편은 크게 나아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칩 설계 분야 매출 상위 24개 업체의 올해 1분기 매출을 분석한 결과 절반인 12개 업체가 적자를 기록했다. 디스플레이구동칩(DDI) 업체 실리콘웍스의 성장이 두드러졌지만 업계 전반적으로는 뚜렷한 개선이 없는 상황이다.
코로나19 이후 수요 회복에 힘입어 가파른 성장을 보여주는 대만 업계와 지지부진한 횡보를 거듭하는 국내 업계의 결정적 차이는 ‘인프라’에 있다.
우리 시스템 반도체 업계와 대만 생태계는 표면적으로는 유사한 모델을 갖고 있다. 대만은 세계시장 점유율 50%를 차지한 파운드리 TSMC 중심으로 칩 솔루션 밸류 체인 협력사(VCA)와 200개 이상의 칩 설계 기업이 있다. 우리나라도 삼성전자 파운드리를 중심으로 삼성전자 디자인솔루션파트너(DSP),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등록 기준 50~60개 중소 팹리스가 있다.
그러나 파운드리 업계와 팹리스 간 협력 측면에서는 차이가 있다. 폭넓은 설계자산(IP)을 확보한 TSMC·UMC는 대만 칩 설계 업체에 저렴한 값으로 파운드리 서비스를 제공해 팹리스를 육성했다. 파운드리 업체는 탄탄한 고객사를 확보하고 팹리스 업체들은 세계시장에서 60% 점유율을 차지한 업체들의 도움으로 가격경쟁력을 가져갈 수 있다는 점에서 ‘윈윈’이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반면 국내에서는 파운드리 업체와 팹리스 간의 미스 매치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초격차 기술을 바탕으로 10㎚(나노미터) 이하 파운드리 구축에 박차를 가하며 글로벌 고객사 확보에 주력하는 삼성전자 전략과 달리 국내 중소 업체들은 28㎚ 이상의 미들엔드 공정이 국내에 시급하게 도입되기를 바라고 있다.
파운드리 공급 부족 현상이 극심한 최근에도 대만 팹리스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있다. 한 팹리스 업체 대표는 “대만 설계 회사들은 자국 파운드리와 오랜 협력으로 그나마 수월하게 칩을 생산할 수 있는 반면 국내 업체들은 어디에서도 적절한 파운드리 공정을 찾지 못해 괴로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대만 정부의 꾸준한 고급 설계 인력 육성책도 눈에 띈다. 신추과학단지 등 대규모 과학 연구 단지를 기반으로 인력 양성에 공을 들이고 해외 유학 인력을 자국으로 유인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이 같은 대만의 생태계를 반영해 국내에서도 시스템 반도체 협력과 선순환 구조를 위해 기반 투자와 인력 양성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강해령 h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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