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계기로 서방 중심의 동맹을 복원하고 중국을 포위·고립시키는 외교 행보에 본격적으로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의 약한 고리인 인권 문제를 부각시키는가 하면 개발도상국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대규모의 인프라 지원책도 꺼내들었다. 코로나19 백신 제공 구상 또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다만 일부 국가가 중국에 대한 강경책에 난색을 표하고 있어 바이든 대통령의 유럽 순방이 성공적으로 끝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 백악관은 12일(현지 시간) “바이든 대통령이 영국 G7 정상회의에서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 방안을 논의했다”며 “글로벌 인프라 구상인 ‘더 나은 세계재건(B3W)’ 출범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오는 2035년까지 개발도상국들의 인프라 구축에 40조 달러(약 4경 4,660조 원)가 필요한데 이를 최대한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중국의 거대 경제권 구상인 ‘일대일로’에 맞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경제 영토 확장을 둘러싼 서방과 중국 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013년부터 추진한 중국의 일대일로는 중국과 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로 철도·항만·고속도로 등을 비롯한 수조 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 계획을 골자로 한다. 미국은 중국으로부터 대출 지원을 받은 신흥국들이 ‘빚의 함정’에 빠져 중국에 경제적으로 예속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아울러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의에서 중국 신장 위구르족과 소수민족을 겨냥한 중국의 강제 노동 관행에 대해 공개적으로 규탄하는 내용을 공동성명에 반영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위구르족 등 소수민족 탄압을 ‘집단 학살’로 규정하고 관계자 제재, 강제 노동에 연루된 상품 수입 금지 등 강경 조처를 실행해왔다.
대만 문제가 거론될 가능성도 있다. 이와 관련해 G7이 공동성명에 ‘대만해협의 안정이 중요하다’는 내용을 포함하는 문제를 놓고 조율하고 있다고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보도한 바 있다. 이 문구가 삽입된다면 G7 정상 선언문 사상 처음이다.
미국이 백신 제공 의사를 밝힌 것도 중국 견제 목적이 담겨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은 10일 5억 회 분의 화이자 백신 기부 계획을 발표하며 G7 국가들의 10억 회 접종분 제공 구상을 이끌었다. 이는 미국이 백신을 독식하고 있다는 비판을 누그러뜨리는 동시에 중국의 백신 외교를 견제하기 위한 행보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유럽 순방에서 중국 고립을 위한 동맹 복원에도 공을 들일 방침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G7 정상회의를 마친 뒤 벨기에 브뤼셀로 이동해 14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15일 미국·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다. 그동안 “미국이 돌아왔다”고 수차례 천명한 바이든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 때 약화된 나토 동맹을 다시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유럽 동맹국을 향해 방위비 증액을 압박하는 등 불협화음을 일으켰다.
다만 바이든 대통령의 대중 고립 구상이 다른 G7 국가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워싱턴포스트(WP)는 “바이든 대통령은 G7이 중국에 대해 더욱 강경한 노선을 취하라고 요청하지만 모든 동맹이 열광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연간 수백만 대의 자동차를 중국에 수출하는 독일, 중국의 이웃이자 교역 상대국인 일본, 중국 일대일로에 동참한 이탈리아를 예로 들었다.
G7 정상들의 반중 전선 결집 움직임에 중국은 강하게 반발했다. 영국 주재 중국대사관 대변인은 “작은 그룹의 국가들이 글로벌 결정을 지시하는 시기는 오래전에 지났다”며 “작은 집단이나 정치 블록의 이익을 위한 것은 사이비 다자주의”라고 밝혔다.
/김기혁 기자 coldmet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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