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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통해 세상읽기] 명찰추호(明察秋毫)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하지않는 '불위'·당장 할수없는 '불능'

둘다 넘어서야 코로나 극복 앞당겨

방역·접종에 헌신한 인력 우대하고

억울한 피해자도 세세히 살펴봐야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전 국민의 25%를 넘기고 정부가 접종을 완료한 사람을 대상으로 여러 가지 인센티브 방안을 내놓고 있다. 실외에서 마스크를 벗거나 가족이 만날 때 인원수의 제한을 덜 받거나 국내외 여행을 갈 수 있다고 한다. 그간 1년 반 넘게 세계적으로 코로나19의 고통을 겪어온 터라 오랜만에 희망을 느끼는 듯하다. 이로 인해 문화계, 여행 업계 등에서 움츠렸던 어깨를 펴려는 몸짓을 하고 있다.

하지만 백신을 접종하고도 코로나19에 걸리는 돌파 감염 사례가 나오고 기존 백신에 강한 변이 바이러스가 속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희망의 노래를 부르기에는 아직 성급한 면이 있다. 지금의 희망은 코로나19로부터 조금이라도 빨리 자유롭고 싶다는 기대 섞인 희망이지 코로나19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과학적 희망은 아니다. 즉 지금의 희망은 코로나19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는 안전한 희망이 아니라 아직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걱정이 남아 있는 불안한 희망일 뿐이다.

불안한 희망일지라도 그간의 고통과 절망의 깊이와 폭을 고려하면 안도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코로나19의 긴 터널이 언제 끝날지 도무지 가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느 정도 통제가 예상되는 상황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국면에서 지금까지 지나온 과정을 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가늠하고 풀어야 할 과제를 현미경처럼 미세하게 들여다보면서도 망원경처럼 원대하게 살펴봐야 한다. 그렇지 않고 희망에만 도취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코로나19의 고통은 끊임없이 반복될 수 있다.

이 두 가지 측면을 하나씩 구체적으로 살피면서 계획을 세워야 방역의 성공과 접종의 속도를 지속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변이 바이러스와 새로운 전염병의 발호에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질 수 있다. 이때 원대한 문제라면 백신 주권의 확립, 지역별 감염병 전문 병원의 지정과 설립, 방역과 접종의 전문 인력 양성과 대우 등이 있고 미세한 문제라면 코로나19의 상황에 따른 방역 수칙의 조정, 방역과 접종에 헌신해온 기관과 인력에 대한 적절한 대우 등이 있다.



전국시대에 활약한 맹자가 제(齊) 나라를 방문해 선왕(宣王)에게 유세하면서 객관적으로 할 수 없는 불능(不能)과 객관적으로 할 수 있지만 주관적으로 시도조차 하지 않는 불위(不爲)를 구분한 적이 있다. 불위와 불능을 구분하기 위해 맹자는 “사람의 힘이 삼천 근의 무게를 들 수 있다고 하면서 새 깃털 하나를 들지 못한다(역족이거백균·力足以擧百鈞, 이부족이거일우·而不足以擧一羽)”와 “눈의 시력이 가을날 털갈이할 때는 가느다란 털끝을 살필 수 있다고 하면서 수레에 실린 땔나무를 보지 못한다(명족이찰추호지말·明足以察秋毫之末, 이불견여신·而不見輿薪)”는 가설적 상황을 제시했다.

삼천 근의 무게를 들고 가느다란 털끝을 살피는 것은 객관적으로 잘하기 어려운 불능의 사례이지만 깃털을 들고 땔나무를 보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데 하려고 하지 않는 불위의 사례다. 맹자는 불위와 불능의 구분을 통해 제 선왕이 고통에 처한 백성을 살릴 수 있지만 그에 합당한 정치를 하지 않으려는 행태를 비판하고자 했다.

코로나19와 관련해 우리는 맹자가 말하는 불위와 불능의 의미와 맥락을 뛰어넘어야 한다. 할 수 있지만 하지 않으려는 불위의 문제만이 아니라 미래에 필요하다면 지금 당장 할 수 없는 불능의 문제도 풀어야 한다. 맹자의 언어로 말한다면 삼천 근의 무게를 들어야 하며 가을날의 가느다란 털도 살필 줄 알아야 하고 하나의 깃털을 들고 수레에 실린 땔나무도 볼 줄 알아야 한다. 즉 동물의 몸을 샅샅이 훑어 가을날 새로 난 털을 살피고 삼천 근의 무게를 들 수 있는 원대한 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해야 한다. 또 깃털과 수레의 땔나무를 잘 살피듯이 끊임없는 헌신을 한 사람과 납득되지 않은 억울한 일을 겪은 사람의 마음을 세세하게 살펴야 한다.

지금도 아직 바쁘고 급하다는 이유로 ‘명찰추호’와 ‘역거백균’ ‘견여신’과 ‘거일우’의 문제에 답을 내놓지 못한다면 고마운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억울한 사람에게 안타까운 눈길만을 보내는 미성숙한 공동체의 민낯을 보여주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제 선왕만도 못한 평가를 받더라도 서운하다는 소리를 할 수 없을 것이다.

/여론독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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